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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터무니 없이 단편적인
2인용 욕조.
당신도 잠시 꿈꾸지 않았을까
by
적적
Dec 8. 2024
나무는 겨울 맞을 준비를 합니다. 봄부터 돋아나 봄의 햇살로 꽃을 피우던 잎을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버리며 헐벗어버리는 일로 시작됩니다.
왜 이리 살갗이 서늘해지고 있는 건지
왜 자꾸만 소름이 돋는 건지
욕조가 사라진 집에서 산 건 언제부터였지.
어릴 적 화장실 한쪽에 육중한-그러니까 태초부터 거기 있었던 욕조는 오백 년이나 천 년 전부터 자라고 있던 은행나무 같았단 말이지
어머니는 낡은 욕조 바닥을 닦을 때마다 신경질을 부리곤 하셨거든 깊은 새벽이면 바닥을 감춘 욕조 바닥을 손바닥으로 짚어보곤 했어.
동네마다 목욕탕이 한두 군데씩 있었고 우린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가서 놀 듯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고 때를 불리고 대충 밀고 나온 각질이 하얗게 보풀처럼 일곤 했으니까 말야.
그 후엔 욕조가 있는 집에 살았던 기억이 나지 않아 코로나 시기가 지나자 목욕탕은 눈에 띄게 사라져 갔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을 만큼 시간과 돈을 들일 생각도 없어졌으니까.
욕조에 물을 받으며 알게 된 것은 욕조에 물을 받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거야 깊지도 않고 겨우 내 몸 하나 잠길 만큼인데 말야.
다 받아졌나 하고 들어가 보면 아직 바닥도 채우지 못하고 있었거든.
그 밑바닥의 한 곳도 남김없이 다 채우고 나야 비로소 눈에 보일 만큼 욕조의 수위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건데.
간혹 그 밑바닥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한 수많은 욕조를 가지고 있어
조금 더 참고 기다렸다면 조금만 더 참고한 행을 더 하고 한 문단을 더 완성했다면 이내 욕조 하나를 넉넉히 채워 욕조가 넘치게 하는 장관을 맛보진 않았을까
일요일 아침의 샤워는 다른 날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갈 거야.
바다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물이 다 차오르길 기다린 건가 하고.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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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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