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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터무니 없이 단편적인
생율 같은 밤
발견되지 않은 밤이.
by
적적
Dec 15. 2024
발견되지 않은 밤이 겨울밤을 돌아다닙니다.
차오른 밤이 더 이상 차오를 수 없어 외피를 찢고 벌어집니다.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밤은 눈부시게 윤기가 납니다. 햇살을 받지 않아도 어두운 밤에도 밤은 윤기가 납니다.
그렇게 땅으로 툭 떨어져 지구는 잠시 여진으로 몸서리를 쳤습니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밤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하늘은 어둡습니다. 비라도 올 것처럼 말이죠. 비가 온다고 해도 상관없는 하루이기도 합니다.
제사를 지내면 밤은 한동안 물에 담겨 있습니다. 맑은 물속에 윤기를 더해가는 밤을 받아 든 작은 아버지께서 손수 과도를 들고 밤을 툭 칼끝으로 쳐 닥쳐올 미래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밤은 깎는다기보다 껍질을 쳐냅니다.
밤의 외피를 쳐나갑니다.
그것은 밤을 전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밤의 내피들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지켜보는 제게 몇 알쯤 건네주기도 합니다. 오독오독 거리며 입안 가득 살짝 떫은맛을 오물거립니다. 상에 오를 밤들이 접시 안에 수북합니다.
왜 예쁜 뒤통수를 깎아놓은 밤알 같다고 하는지 알게 됩니다.
산책로에 있는 밤나무 아래서 바닷속을 걷는 성게를 보았습니다.
낡은 가시로 내디디며 걷는 걸음마다 가을이 쿡쿡 찔렸을 것입니다.
겨울이 찔린 상처를 덮어가며 깊어지고 있습니다.
흐리고 낮은 하늘이었다가 푸른 연이 바람을 타고 상승하듯이 높아지어 갑니다.
새벽엔 잠시 눈이 내렸나 봅니다.
볕 아래 잠시동안 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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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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