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자욱했던 어느 날.

by 적적

뻑뻑한 음식을 먹습니다. 입안 가득히 타액도 섞이지 않을 만큼의 뻑뻑함.

곡물로 만든 비스킷으로는 다이제***처럼 입안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사막으로 만드는 그리하여 발목까지 오는 사막화를 신고도 신발을 벗으면 양말이 온통 모래 알갱이가 가득 들어있는 그런 뻑뻑함이 당길 때가 있습니다.


너무 눅눅하고 습기로 가득한 날이면 말이죠. 돌아가신 아버지는 안개꽃을 유난히 좋아하셨습니다. 정확히는 아주 풍성한 안개 꽃다발을 말이죠. 아버지의 생신이 가까워지면 고모는 품에 안아도 모자랄 안개 꽃다발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웃는 걸 본 적이 없던 아버지는 현관문이 열리고 꽃다발에 눈길이 닿자마자 입꼬리를 어쩌지 못하는 어린 소년처럼 웃으며 꽃다발부터 건네받았습니다. 안개꽃은 전용 화병에 꽂혀 사라지지 않을 안개처럼 거실 탁자 위에 퍼져나가 온 집안을 뒤 덥곤 하였습니다. 꽃의 일을 충실히 하고 나면 서둘러 시들고 거실 벽 면에 걸려 있었습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며 단두대에 끌려온 두려움으로 가득한 그 작고 여린 꽃잎은 하나하나 겁을 먹고 일일이 시듭니다. 그리고 손으로 만지면 과자 부스러기처럼 바닥에 떨어집니다. 아버지는 국기 하양식을 거행하듯 걸려 있던 꽃들을 바라다보다 손수 꽃다발을 치웠습니다. 그 며칠 동안 어머니는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안개 꽃잎을 쓸어 담으며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물론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안개로 가득한 날입니다. 안개가 다가옵니다.

조금씩 천천히 야금거리며 이빨 자국을 냅니다. 건너편 아파트가 안개에 사라집니다.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려도 좋을 것 같은 날입니다. 산채 길로 안개에 휩싸인 길을 선택합니다. 거실 창문으로 바라다보던 그곳까지 걷습니다. 그곳에 서서 뒤돌아보며 창가의 나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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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다가올 안개를 다시 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가 비에 젖지 않듯이 안개는 안개에 휩싸이지 않고 풍경을 손아귀에 감출뿐입니다.


그저 창가에 서 있거나 안갯속에서 나를 찾는 일을 반복할 것입니다.

밀폐 용기에 담에 두었던 건빵 몇 알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입안을 사막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식료품 가게처럼 만듭니다. 건빵 하나를 모란이 물고 따라갈 수 없는 곳, 손에 닿지 않는 곳, 게을러 따라가지 않을 곳만큼 도망쳐 먹습니다. 그리고 부스러기를 만듭니다.


오래전 사막을 횡단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지구의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아니 외계인을 만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질문을 할 것입니다.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그 수많은 날의 지랄 맞고 지루하며 이젠 곰팡이로 뒤덮인 무용담 속에서 딱 하나 기억에 남았던 건 사막을 건너지 못한 자들은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인해 땀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쾌적한 착각으로 수분을 섭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탈수 증세가 오고 쓰러져버리면 물병 뚜껑을 돌릴 정신도 잃게 된다는 것이었죠.


비교적 짧은 설명이었고 그 말이 가이드의 말이었는지, 친구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는지 알 순 없지만, 사막처럼 건조하고 물기 한 방울 없는 직장 생활이나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물 한잔을 건네거나 손가락 끝으로 물병을 가리키며 물을 마시라는 고갯짓을 해준다면.


친구는 자기가 죽으면 사막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했었는데 아무도 사막에 가본 적도 없고, 유골을 뿌릴 만큼 너를 사랑하진 않았기에. 친구는 매년 자라나는 아이들의 절을 받으며 후미진 공원묘지에 묻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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