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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하룻밤, 선하던 눈빛

by 적적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 모란이 나오지 않습니다. 늘 퇴근하면 뽀로로 달려와 무한대로 다리 사이를 오가며 목덜미를 비벼대던 녀석이 흐린 하늘로 집안은 어둡고 불을 켜자 그제야 잠이 깼는지 모란이 내려오는 모습과 창가에 두었던 화분이 화분 안의 작은 돌멩이들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바닥은 온통 돌멩이들이 나 뒹굴고 있고 다행히 화분은 깨지지 않은 채 누워있습니다.

모란은 돌멩이 하나를 발로 튕겨 몰고 다니고 돌멩이와 흙가루들을 쓸고 모아 정리한 뒤 화분을 창가에 두고 흙들을 다시 화분에 채웠습니다. 등줄기로 땀이 흐릅니다. 집으로 출근해 다시 퇴근한 기분이었습니다. 모란은 청소를 마칠 동안 어슬렁거리며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시고 모아둔 돌멩이들을 다시 한번 발로 차 흩어놓습니다.

모란아 다친 덴 없니?


도망치는 모란을 잡아 발바닥을 들여다보고 몸 이곳저곳을 살필 동안 계속 손가락을 깨뭅니다.


욕실에 가서 샤워를 끝내고 나자 금요일 아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너만 괜찮으면 된다. 화분이 안 깨진 것도 다행이고 화초 끝은 네가 다 씹어놓아 죽은 것 같으니

밤 산책을 다녀옵니다.


안개가…. 안개가…. 불빛 아래로 모여듭니다. 붉은 등불 아래 붉은 날개를 가진 안개가 파란 등불엔 파란 날개가 흰 불빛 아래 흰 날개를 가진 하루살이처럼 모여서 비가 되지 못한 안개가 모여듭니다.

살아있는 안개가



오래전 제가 살던 곳엔 작은 부대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던 가까운 곳엔 부대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 부식을 사러 나가거나 부식을 사 가지고 들어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곤 하였는데 눈빛이 늘 우울하고 지리한 표정이었습니다. 군용 트럭에서 내릴 수 없는 사람 같았어요.


군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들어서 안 것이기도 한데 그 사람은 슈퍼에서 라면 한 봉지를 들고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하였습니다. 라면을 조금 부숴서 나눠주고 수프도 라면 위에 뿌려준 뒤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끌려가는 그 사람을 보았을 때 군대를 제대할 만큼 늙어버린 한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를 향해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그의 터무니없이 작아진 손을 흔들며 사람들에 파묻혀 군용 트럭을 타고 사라졌습니다.


그가 무슨 일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 그리고 도망쳐 나와 고작 라면을 부숴 먹고 그걸 또 나눠주고 산속에 굴을 파고 하룻밤을 지내다 왜 순순히 잡혀갔는지 자꾸만 아는 체도 하지 못하고 손을 흔들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더 나이 든 어른이 된다는 건.


이제 그 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부대로 복귀하라고 할 만큼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라면을 받아 입안에서 씹지 못하고 있던 아이에게서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입안이 뻑뻑하고 라면스프로 짜디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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