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절한 휴무안내문

모두가 지나치는 하루, 가장 깊은 하루

by 적적

매주 화요일은 쉽니다.


가게 유리문 위에 덧붙여진 종이 조각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화요일, 그날은 비워두기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동네는 월요일 오후부터 일종의 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생필품 목록이 적힌 메모지가 주머니에서 꺼내지고, 장바구니를 끌고 다니는 손들이 빨라지고, 물건을 향한 시선이 보다 절실해진다. 사람들은 월요일 저녁까지 가게를 서성인다. 사야 할 것이 뭔지 모를 때조차 그냥 돌아가지 않는다.



혹시라도 필요한 걸 빠뜨릴까 두려워서다. 어쩌면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결핍을 피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부재를 대비하는 자세, 무언가 없어졌을 때 생기는 어색함을 미리 막으려는 사소하지만 절실한 방어. 수요일 아침이면 진열대가 다시 채워진다. 그러나 화요일을 견디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하루가 너무 길다.

신선식품은 시들고, 식빵은 마르며, 우유는 유통기한을 지난다. 채워 넣은 것들이 줄어드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부엌에 선 사람은 안다. 쌀통이 가벼워지는 촉감, 김치통에 젓가락이 닿는 깊이, 그 모든 감각이 화요일을 지나며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월요일 밤은 이상하게 분주하다. 가게 안엔 긴 숨을 쉬며 걷는 사람들, 목록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걷는 걸음들, 급하지 않지만, 한시도 늦출 수 없는 표정들이 있다. 필요한 것만 사는 이도 있지만, 그보다 많은 이들은 ‘사야 할지도 모를 것’을 함께 담는다. 생존을 위한 확신이 아니라, 결핍에 대한 불안이 장바구니를 채운다.


그 문장.


화요일은 쉽니다.



참 이상한 문장이다. 쉰다는 말이 모든 것을 멈춘다는 뜻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오히려 그 하루의 공백은 모든 움직임을 더 분주하게 만든다. 잠시의 정지가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그 전날과 그다음 날을 재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살아간다. 쉼이라는 공백 앞에서 속도를 더한다. 휴식은 소비를 유도하고, 정지는 계획을 세우게 만든다.



멈춘다는 것은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멈춘 이후를 준비하는 어떤 예행연습이다. 화요일에 문을 닫는 가게에는 사정이 있다. 누군가는 시장일을 병행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날 병원 진료를 받는다. 누군가는 화요일이면 장을 보고 식자재를 손질하고, 가게 바닥을 닦고, 배달 박스를 정리한다. 물건이 없는 날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 가게의 문은 닫혀 있지만, 삶의 리듬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창작하는 이들도 비슷하다. 화요일은 쓰기 위해 존재하는 날이다. 장사를 멈추는 대신 문장을 조합하고, 상품 대신 문단을 정리하고, 바닥 대신 언어의 틈을 닦는다.



팔릴 물건이 아닌 남겨야 할 문장을 위해 바쁘다. 그러니 진짜 쉬는 날은 없다.

세상엔 ‘쉰다’라는 말을 붙여놓아야 비로소 쉴 수 있는 일들이 있다. 화요일, 문을 닫은 채 안에서 식칼을 갈고,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를 씻는 사람처럼. 겉으로는 쉼이고, 속으로는 준비다.

그런 날이 필요하다. 겉으로 멈추고 있어야 안에서 무언가 자라난다.



화요일은 그런 날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의 하루. 간판 불은 꺼졌지만, 냉장고는 돌아가고, 메모지는 채워지며, 이름 없는 계획이 모양을 갖춘다. 매장을 지나던 낯선 사람은 문 앞의 종이를 읽고 되돌아선다. 그는 모른다. 이 문을 닫은 사람의 화요일이 어떻게 정리되고,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어쩌면 진짜 고요는 그런 닫힌 문 뒤에서 흐른다.



왜 하필 화요일이냐고.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 것이 이 작은 질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쉰다는 것은 설명을 유예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 세계에서 하루쯤은 불투명하게 살아가는 일. ‘화요일은 쉽니다’는 하루의 안내문이자, 한 생의 방어기제다. 잃지 않기 위해 닫고, 지키기 위해 멈추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은, 늘 누군가의 수요일을 준비하고 있다.



비워야 채워지는 일들이 있다. 열어둘 땐 보이지 않던 결이, 닫는 순간 그 윤곽을 드러낸다. 소음 속에선 미처 들리지 않던 고요가, 쉼의 틈에서 문득 속삭인다. 한 걸음 물러섰을 때 비로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화요일은 그런 날이다. 모두가 지나쳐버리는 무심한 하루지만, 바로 그 무심함 속에 가장 깊은 생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그 안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것들. 이따금,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낮은 시간에 홀로 서성이며 생각한다.



멈춘다는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숨어드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쉬는 척하며 살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사실은 모든 것을 준비하며.


화요일은, 매주 한 번, 삶이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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