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서사도 없이.
음복을 하지 않았다. 제사상에 올린 술잔이 하나둘 비워지고, 누군가의 주름 깊은 손이 조심스레 잔을 돌렸다. 그 향이 좋다는 술이었다. 흔들림 없는 손끝으로 잔을 들이켠 이들은, 잠자코 제삿밥을 입에 넣고, 말없이 술을 삼켰다. 어깨는 축축 늘어졌고, 눈동자는 푹 꺼진 광처럼 깊었다. 아침은 지나가고 있었고, 마당에선 묵은 흙냄새가 비를 맞고 솟아올랐다. 흙냄새 위에 어제의 술 냄새가 겹쳐졌다.
작은아버지와 아버지는 여전히 잠자코 방 안에 누워 있었고, 그들의 코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숨소리가 제삿날 다음 날의 풍경을 대신하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된장을 풀어 해장국을 끓이는 냄새가 났다. 묵직한 쇠 국자 소리와 들기름 볶는 냄새가 짙게 퍼졌고, 된장과 마늘, 대파와 육수가 합쳐진 향이 고루 퍼진 방 안에서는 누군가 몸을 뒤척였다. 다시 눕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해장은 의식처럼 진행되었다. 술이 깨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다시 궤도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따금 누군가는 두부를 씹으며 “간이 딱 맞네”라고 중얼거렸고, 그 말은 늘 같은 어투로 반복되었다. 간은 항상 맞았다. 맛은 늘 비슷했다. 기억만이 약간씩 달랐다.
홍합짬뽕을 먹고 싶다는 욕망은 늘 계절의 틈새에서 고개를 들었다. 새벽에 비가 내리고, 그 비가 볕 없이 말라가며, 아침까지 서늘한 바람이 불 때. 그때는 2층 계단을 올라, 눅눅하고 규칙적인 문양이 새겨진 벽지를 손으로 훑어가며 복도 끝의 창문 없는 방을 찾아야 했다. 벽지 끝이 약간 뜯겨 있고, 냉기와 습기가 어깨에 내려앉는 방. 그곳에서는 낮술이 가능했다. 아니, 낮술만 가능했다.
빼갈 한 병 시켜놓고, 짬뽕 국물에 홍합껍데기를 하나씩 뱉어내며 술을 마셨다. 혀끝이 얼얼해지면, 가슴팍에 불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그걸 살아 있음이라고 불렀고, 또 누군가는 그냥 무기력의 한 방식이라 여겼다. 낮술은 빠르게 취기를 올리고, 서둘러 감각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마주 앉은 이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만 보이고, 말의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국물 속에 침잠한 고춧가루가 용솟음치듯, 잔 안의 투명한 액체도 자주 출렁였다. 출렁이는 사이,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붉은색은 감정이 아니라 반응이었다. 몸이 내는 신호는 감정보다 먼저, 훨씬 더 정직했다.
어떤 기억은 결단코 존재한 적이 없는데도 불쑥 튀어나왔다. 창문도 없는 방 안, 붉은 조명의 식탁에서 맞은편 얼굴이 순간 어머니의 젊은 시절 얼굴 같아 보이기도 했고, 다음 순간엔 중학교 시절 교실에서 수업을 듣던 어떤 선생의 뒷모습으로 겹쳐졌다. 취기 속의 얼굴들은 늘 정확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믿고 싶어졌다. 불분명한 것이 때로는 진실처럼 굴었다. 그날그날의 감정에 따라 기억은 다른 결을 가졌고, 때로는 생략되었으며, 종종 덧붙여졌다. 술을 마신 사람은 코를 골았다. 그 숨소리는 예배당의 파이프 오르간처럼 일정하고도 장중했다. 창문 없는 방 안은 낮인데도 어둡고, 어두운데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홍합껍데기가 수북이 쌓였고, 국물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반 병 남은 술은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무릎 위로 흐른 국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서늘한 바람이 문틈을 통해 다시 들이쳤다. 그 바람은 ‘밖’을 상기시키는 유일한 통로였다. 제삿날 다음날은 늘 그랬다. 사람은 많았고, 대화는 적었다. 누군가는 아침에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마당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입에 문 담배는 좀처럼 타들어 가지 않았고, 하늘은 바람 없이 낮게 내려와 있었다. 담배 연기는 풍경 속으로 삽입되지 못한 채 허공에 맴돌았다. 연기 속의 사람은 얼굴 없이 서 있었다.
누군가 창문 없는 방에 들어섰다. 짬뽕 국물과 술 냄새, 식은 반찬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그는 코끝을 살짝 찡그렸다.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고, 식은 국물 한 숟갈을 떠서 삼켰다. 입술이 붉게 물들었다. 그 열기가 점차 볼까지 번졌다. 소주잔을 비웠다. 누군가 말했다. “좋은 향이다.” 말은 순환되었다.
말도 기억도, 행동도. 다만 비는 매번 다르게 내렸다. 어떤 날은 부드럽게, 어떤 날은 세차게. 하지만 비가 그친 뒤의 바람은 늘 닮아 있었다. 그 바람이 불면, 다시 계단을 오르고, 창문 없는 방으로 향했다. 무언가를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유일하게 떠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무엇이든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는 술의 기능이 구원이 되었다. 세상은 낮이었지만, 그 방 안에서는 시간도 방향도, 감정도 의미를 잃었다. 다만 혀끝에 남는 매운맛,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의 뜨거움, 불그레한 뺨 위에 번지는 열기만이 감각의 중심에 남았다. 그것은 유서 없는 전통이라 불렀고, 그냥 집안의 기후라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계속되는 기후. 끊지 않아도 사라지는 열기. 기억조차 허락되지 않는, 하지만 매해 되풀이되는 장면들.
짬뽕은 다시 한번 시켜졌고, 술은 또 한 병 열렸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없다. 그런 날이 실제로 있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기억 속 장면을 흉내 낸 환영이었는지, 판단할 길은 없었다. 그 방에 앉아 있었던 적도, 홍합껍데기를 탑처럼 쌓은 적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서늘한 바람이 문틈을 타고 들어오던 그 찰나의 기분, 목젖을 타고 내려가던 따뜻한 국물의 감촉, 뺨에 번지던 알코올의 열기만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했다. 실제보다 더 선명한 잔상처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은 종종 존재보다 앞섰다. 존재하지 않았던 하루가, 존재했던 모든 날보다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그런 장면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버스 창밖을 보다가, 전혀 관련 없는 냄새를 맡다가 갑자기 몰려왔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의 크기나 젓가락을 내려놓는 속도까지 세밀하게 떠올랐고, 그 안에 있었던 감정은 어쩌면 과거가 아니라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결코 없었던 날이었는데도, 마음 어딘가에서는 언젠가 있었던 것처럼 스며드는 그런 장면.
짬뽕 국물 속을 헤엄치는 홍합껍데기, 잔을 비우며 중얼거렸을 ‘좋은 항이네’라는 말투, 조용히 내리던 비, 복도 끝 창문 없는 방. 모두 실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남아 있었다. 경험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경험했던 것 같은 기억. 그래서 더 떠나지 않는 장면.
그런 날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그날은 있었다.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던.
대문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