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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서도 무용한 것

가슴에 닿으면 유용해지는 곤 해

by 적적

교묘하고 사악하게 세탁기에서 모든 일을 끝냈다는 소리를 냅니다. 세탁기였구나 어서 일어나 세탁기 문을 열고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널어야 해 지금 널지 않으면 빨래들은 늦게 문을 연 형벌로 시큼한 냄새가 날 거야.

아직 회복되지 않고 길게 늘어진 팔목을 바닥에 끌며 빨래들을 허공에 털어냅니다. 탈수를 끝낸 빨래는 금요일 밤 11시의 지친 나처럼 어깨는 처져있고 모든 곳에 구겨져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기온만으로 옷을 입으면 한낮동안 땀을 흘리는 계절입니다.


며칠 전 카톡으로 친구가 구입한 물건을 구경했습니다.


장식품으로 낡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다들 물건의 이유를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 물건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모르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남자들의 단체 카톡 방은 고요합니다. 색다른 일도 없고 숫자는 잘 사라지지도 않으며, 아주 짧은 대답과 감정표현도 호응도는 바닥에 가라앉아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한 친구는 남들 다 놀 때 아이를 키우고 아내와 다투느라 늘 힘에 겨워했습니다.


커다란 비닐봉지가 화면에 나타나고 작은 박스 하나 그리고 단단히 결박되어 있던 물건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기쁨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누든 칫솔이든 주물로 만든 프라이팬이나 자동차 그리고 평수가 늘어난 집이든 기쁨은 구입한 사람의 얼굴까지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친구의 장바구니에는 수많은 물건이 잠들어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모든 물건을 제치고 그가 구입한 물건은


메. 트.로. 놈


그놈이었죠.

어릴 적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들고 와서 만지지도 못하게 하던 물건이었다고 만져보고 쓰다듬어보고 뒤집어 보고 싶었지만 교탁 위에 물건을 바라만 봐야 했었다고.


늘 실용적인 물건만 샀었는데 한 번쯤 무용한 물건을 사고 싶었다고 그뿐이었다고 아내와 아이들이 계속 물어보니 왜 샀는지도 지금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의 물건을 구입합니다. 음식이, 생활용품이, 건강 보조식품이, 그리고 유행이 지나지 않은 옷가지들이.


그래…. 그런 물건 하나 있어야지. 살아가는데 하나 도움이 안 돼도 바라보고 있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날의 나를 천천히 알아거게 되는 물건.


좌우로 움직이며 치우치지 않는 무더운 여름날과 선선한 가을날을 직선 위의 추를 바라다보며 하염없고 고즈넉해질 무언가가 너도 잠시 되어보는 거지.


잘했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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