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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벼룩시장

나는 필요를 너무 늦게 알기도 해

by 적적


그렇게 썩어빠진 눈동자를 하고 느슨하고 나약하기까지 한 눈동자로 어떻게 옷을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여동생은 옷을 모두 꺼냈다. 붙박이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은 나를 거실 중앙에 앉혀두고


이제 내가 손으로 들어 올리는 옷을 버려야 하는지 입을 것인지 잠시 생각해봐야 하는지 결정한다.

나를 보지 말고 옷을 보란 말이야 직관적으로 말하라고 자유롭게 눈치 보지 말고.



그날 그 많은 옷은 쓰레기봉투 100리터짜리 두 개로 분류되어 사라졌다.

딱히 필요하지도 입지도 않을 옷은 붙박이장이 텅 비도록 사라졌다 물론 잠시 생각했던 옷들은 고스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날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문장이, 문단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거칠고 난폭하거나 혹은 음란한 것들이어서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 즈음 쓰기 시작한 이 글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었으며 쓰는 동안에도 쓸모를 알지 못해 망설이긴 하였으나 그저 끝까지 써보고 싶은 문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 쓴 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겐 필요치 않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필요하다면 가져다 쓸 수 있지 않을까?

전체 문단이거나 일부를 발췌해도 상관없으므로.




몸 안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유출이 아니었다. 살 속 깊은 곳, 장기와 장기 사이,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막연하고 축축한 틈새에서부터, 정체 모를 흐름이 내 안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피보다 무겁고, 땀보다 더 익숙했으며, 체액과는 다른, 분명히 감정이거나 기억이거나 혹은 그 둘이 응고된 것 같은 질감이었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는 자각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불가역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흐르고 있었다. 존재의 껍질이 아니라, 그 핵심이. 내가 감추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가지고 있던 어떤 오래된 무엇이 해체되고 있었다.


그것은 욕망의 정점에서 비롯된 파열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이 꺼진 직후의 무중력에서 피어나는 일종의 부재였다. 어떤 촉감은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그의 손가락이 내 어깨를 스쳤을 때, 나는 그 손길이 살에 닿는 동시에 과거의 나를 불러들이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나는 그의 손길을 알지 못했고, 그의 체온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의 언어를 번역할 수 없었다. 그 무지를 나는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알게 되어버렸고, 체득했고, 이 불가해한 침투가 내 존재를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감지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고통은 언제나 아름다움의 부검이다.



그의 손길은 집착처럼 무거웠고, 동시에 무의식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가 나를 잡았을 때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느꼈다. 그는 나를 다시 안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서 흘러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어쩌면, 타인을 품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누출되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떤 종류의 공포인지도 모른다. 그는 나의 어깨를 통해 나의 현재를 잡았고, 나는 그의 손길 속에서 미래를 잃었다. 나는 다시는 예전의 내가 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지만, 누구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나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내 안에 존재하던 수천 겹의 나 자신이 해체되며, 기억과 감각이 분리되고,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무중력의 상태. 나의 피부 아래에서 심장은 여전히 고동쳤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심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와 연결된 심장, 그가 맺은 어떤 감정적 관음증의 박동이었다. 나는 내 몸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은 감각이 아니라 환영이었다. 육체는 그 순간 나의 것이 아니라, 그의 시선과 그의 기대 속에서 재구성된 또 다른 '나'였다.



침대를 내려서며 나는 나 자신에게서 멀어졌다. 발뒤꿈치에서 느껴지는 바닥의 감촉, 천천히 식어가는 허벅지의 열기,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의 궤적.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임에도 낯설었다. 인간은 자기를 잃는 방식으로 타인을 경험하고, 타인을 경험한 만큼만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나는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나의 일부는 여전히 침대 위에, 그의 옆에, 그의 손가락 사이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떤 분실이 아니라 자발적인 투항이었고, 동시에 무의식적인 유실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너무 많이 허용했음을 알았다. 단지 육체를 허락한 것이 아니라, 그를 나의 존재의 안쪽으로 초대했던 것이다.



새벽빛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희미하고 중성적인 빛은 모든 윤곽을 부드럽게 지웠고, 육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 희미한 빛 속에서, 나는 나의 팔꿈치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그의 손가락이 어디에서 끝나는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분리되지 않는 접촉, 분명한 구분이 사라지는 순간.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뚜렷한 고독이 침투한다. 나는 나이기를 멈추고, 그가 되어버린 파편들을 인식했다. 나는 더 이상 하나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둘도 아니었다. 나는 파편이었다. 감정의 파편, 기억의 파편, 육체의 파편.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때때로 언어보다 더 포악하다. 그는 나를 붙잡은 채, 침묵했고, 그 침묵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이 천천히 사라져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물이 물속에서 사라지는 소리였고, 그 소리의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단지 나의 과거라는 껍질을 쓰고 살아가는 하나의 낡은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나를 욕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환상을 욕망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환상을 그에게 건네주고, 나 자신은 그 뒤에 숨어버렸다.



방을 나서며 나는 내 어깨에 그의 체온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사랑의 잔향이 아니라, 일종의 윤리적 얼룩이었다. 나는 나의 존재를 허락한 대가로, 그의 흔적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했다. 육체는 잊어도 촉각은 기억한다. 촉각은 언어보다 오래 남는다. 말은 지워져도, 손길은 남는다. 나는 그날 그의 손끝에 의해 재구성되었고, 그의 체온에 의해 재해석되었으며, 그의 침묵에 의해 침몰되었다.



그것은 피의 질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는 하나의 존재가 서서히 녹아내려,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해체였고, 동시에 생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탄생이 아니라, 그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나였다. 나는 나를 잃었고, 그는 나를 갖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지 못한 채, 서로를 침식했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일부나 전체수정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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