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힐 땐.

아마 상상도 못 했겠죠...

by 적적

지금도 그런 걸 배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실과 시간마다 이런 걸 왜 배우나 했습니다. 뭐 다른 걸 가르쳐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던 아이겠지만.


어느 봄날이었는데 호박전을 할 예정이니 친구들과 5명 내외로 조를 만들어 나눠서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별로 좋아할 수 없는 식감의 호박을 전으로 해 먹어야 하나 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아이들은 준비물을 서로 나누고 저는 밀가루와 프라이팬을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당일의 기억은 애호박을 칼로 조심스럽게 잘라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물에 담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잠시 기다렸다가 계란 물을 먹은 호박을 숟가락으로 살짝 내려놓으면 가랑비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모양을 보며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간장을 살짝 찍어 먹으니 식감은 어느 음식에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 뜨거움으로 잘 씹지도 못했으면서 입안으로 번지던 기름 향과 친구들과 함께 만들며 웃었던 햇살 속에서 풀풀 날리던 밀가루처럼 아직도 호박전을 보면 그날의 교실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날 설거지는 제가 했습니다.


누군가 창가에 사이다 한 병을 두었는데 평소 탄산음료를 좋아하지도 않던 저는 홀리듯 그 병 안의 기포들을 바라다보며 아이들이 안보는 틈을 타 사이다 한 모금을 마셨습니다.


그러게요 기포가 너무 느리게 올라왔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얼른 창가에 기대어 운동장 보는 척 화단에 식용유를 뱉어버렸습니다.

그걸 보고 곁으로 다가온 친구의 입막음을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한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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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해 겨울 실과 시간엔 바느질을 배웠습니다. 천 조각 두 개를 준비해 바늘과 실을 준비물로 가져가서 시침질을 배우고 감침질로 마무리를 하였어요.

집으로 돌아가 구멍이 나거나 틈이 벌어진 곳마다 쪼그리고 앉아 바늘을 들고 다니며 꿰매고 다녔어요. 나중엔 빨간색 실을 꿰어서 다니며 내가 꿰맨 자리를 표시하고 다녔죠.


며칠 전 단추가 사라진 남방을 벌어진 채로 입고 다니다 어제 바늘과 실을 꺼내 단추를 달았습니다. 내 안의 그때의 내가 불쑥 튀어나옵니다. 잘 달려있던 단추를 모두 떼어냅니다.

모란은 바늘을 길게 허공으로 쏘아 올릴 때마다 뒤따르는 실을 보며 팔딱팔딱 뛰어오릅니다.

그리곤 빨간, 노랑, 파랑, 초록, 주황색으로 단추를 달았습니다.


새벽녘 무슨 이윤 지 알 순 없지만 아니 외면하고 싶었지만, 불을 켜고 단추를 모두 떼어내고 흰색 실로 다시 달았습니다.


새벽까지 삵바느질을 하느라 눈이 침침한 아침입니다.


저녁엔 호박전을 해 먹어야지....

라는 생각을 중식도로 과감히 잘라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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