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간다. 너무 깊이 들어가서 별을 관통할 수도 있다.
아주 작은 별이라면, 바오밥 나무는 그 별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긴 밤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잠깐 잠들었다 깨어나 보면. 쓸데없는 생각들을요. 마음속에 던져 놓은 종이 뭉치들이 수북합니다. 내 생각의 속씨는 종이에 쓰이거나 핸드폰에 메모하는 순간 발아 하기 시작합니다.
어린 왕자는 비상 착륙한 비행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신의 별에 있던 무서운 씨앗에 대한. 땅속 어디에나 숨어있다가 오래도록 방치하면 별 전체를 휘감아 버리는 별에 대해서. 바로 바오밥 나무에 대해서 말이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글렌코바오밥’이라고 불리는 나무는 나이가 무려 2,000살로 추정됩니다.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가 어느 기억쯤 있을지도 모를 만큼 살았습니다.
불편한 생각들이 몸을 관통하지 않게 산책하러 나갑니다.
바오밥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속씨식물입니다.
내 안에는 그런 씨앗이 가득합니다.
오늘 산책은 조금 길게 다녀왔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가을이 도둑처럼 올 거라고
자고 일어났더니 잠든 사이 도둑이 들어 마음을 헤집어 놓고 꽃씨를 이곳저곳에 뿌려두고 갈 거라고 아직 잠든 땅속에서 꽃씨가 되어.
작은 씨앗이었어요. 나는 내가 무언지 모르죠. 아무도 내게 이름을 알려주거나 명명되거나 호명된 적이 없었으므로 저 검은 아스팔트를 얼마나 걷어내면 흙이 나오는지 아나요?
인간이 뒤덮어 둔 아스팔트는 1m 남짓 파 내려가면 붉은 지구의 피부가 드러나죠. 찰과상을 입으면 피가 배어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나의 살갗만큼 터무니없이 상처 입기 쉬운 거죠.
몇 해 전 귀농한 친구에게 안부를 묻자 접어 올린 흙이 잔뜩 묻은 바짓단 사이로 꽃씨가 자라는 사진을 보내주었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털어 버리면 먼지처럼 흩날린 흙 속에서 싹을 틔운 꽃은 발아된 봄에 옮겨 화분에 심었다며 꽃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바지단꽃
그해 봄은 친구들과 만나면 그 꽃 이름으로 건배사를 대신하였어요.
도둑이 들 거란 걸 알았으니 이제 훔쳐 갈 것을 이곳저곳에 숨겨둬야겠어요. 지난봄과 여름에 있었던 옷이나 기억 또는 추억. 휘발성이 강해서 작은 정전기만으로도 불이 붙을 수 있는 것들로 말이죠.
이제 가을이 지나고 있습니다..
가끔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정기적으로 물건을 받아볼 것인지 묻는 질문에 망설인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영양제나 혹은 햇반, 유통기한이 너무 먼 미래로 여겨지는 물건들은 더더욱 그때까지 있을까 괜히 나도 없는데 매달 집 앞으로 배송된 물건은 어디로 쌓아둘지 걱정이 되곤 했죠. 물론 나는 매번 유효기간이 지난 카드를 갱신하고 살아갈 날들을 갱신하는 중이지만 사는 건 때로 기록을 경신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오래 살아 있지만, 할아버지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내야 합니다.
지난해 봄 보다 조금 더 야위어 있고 엄지손가락에 반지를 낄 때마다 손가락도 살이 빠진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죠. 돌아온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나면 실수로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처럼 온 물속을 청색 빛 피곤으로 물들이고 있죠.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글을 쓴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냥 오늘은 기억하려고
이토록 길고 남루한 넋두리를 참을성 있고 성실하게 들어주는 그대가 있으니.
물을 가득 채워 든 컵을 들어 올립니다.
바지단꽃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