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리 지지 않기 위해 지켜내야 할 온도.
냉장고 문이 천천히 열리면, 우유는 가장 먼저 시선을 받는다. 차갑고 흰 몸통은 빛을 반사하며 작은 결점을 숨긴다. 병이든 팩이든, 우유는 늘 말이 없다. 침묵은 신선함의 증거다. 무언가가 아직 응고되지 않았다는 사실, 덩어리 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감탄할 만한 상태다.
기울여 보면 알 수 있다. 경사가 시작될 때, 액체는 가장 낮은 쪽으로 흘러내린다. 부드럽게, 망설임 없이, 고통도 없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흘러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방향을 고민하지 않고, 흘러야 할 쪽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것. 우유는 알고 있다. 무언가를 붙잡지 않으면 고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이는 순간 차가움은 식고, 부드러움은 딱딱하게 굳기 시작한다. 그렇게 덩어리가 생긴다.
덩어리는 피로다. 외부의 열에 오래 노출되거나, 시간이 지나면 우유는 결국 자기 몸속에서 작은 반란을 마주하게 된다. 미세한 응고는 처음엔 드러나지 않는다. 컵에 따르면 여전히 부드럽고 흰 몸이 흐른다. 그러나 혀에 닿는 순간, 감지된다. 알 수 없는 저항감. 순결했던 물성에 틈이 생겼음을 입 안에서 알아차린다. 신선함은 그렇게 서서히 퇴장한다.
신선함은 항상 침묵 속에 있다. 오래 머무르지 않고, 조용히 다녀간다. 오직 감각만이 그것을 알아본다. 냉장고의 안쪽, 은은한 LED 조명 아래, 우유는 고요한 의식처럼 자리를 지킨다. 매일 같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 조금씩 줄어들고 마침내 사라지는 것. 마시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향도, 색도, 무게도. 그렇기에 우유는 가장 이상적인 존재다. 흔적 없이 흘러가고,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남기지 않는다.
흰색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색이다. 잡티 하나로도 전체 인상이 바뀐다. 우유가 가진 완전한 흰색은 완벽함이 아니다. 결점을 숨길 줄 아는 기술이다. 빛을 반사해 자신의 안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밀도 높은 침묵의 기술. 인간이 흰 셔츠를 입을 때와는 다르다. 인간의 흰색은 언제나 과시다. 청결하다는 신호, 준비되어 있다는 제스처. 그러나 우유의 흰색은 그런 의도를 가지지 않는다. 그저 태생이 그렇다. 태어날 때부터 속이 하얗다. 스스로를 가꾸지 않아도 하얗다. 억지로 씻지 않아도 냄새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렇게 순하다.
사물 중에서 시간이 지나면 응고되는 것들은 대개 흥미롭다. 소스나 크림, 풀이나 피. 응고는 의미다. 변화의 증거이며, 유통기한이 있는 존재의 자취다. 하지만 우유는 응고되기 전까지가 아름답다. 변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그 상태. 부드러움이 균형을 이루는 그 순간. 흘러도 모양이 망가지지 않고, 기울여도 분해되지 않는 그 유예된 시간.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형태를 만들고 싶어 할까. 유리잔, 종이컵, 텀블러, 입술. 우유는 그 안에 들어가면서 잠시 형태를 빌릴 뿐이다. 하지만 결국은 흘러야 한다. 마셔야 하고, 삼켜져야 하고, 몸속으로 흡수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존재를 지속할 수 없는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셔질 때까지 우유는 아무 말이 없다.
덩어리 지기 전까지의 모든 것에는 묘한 안온함이 있다. 젤라틴으로 굳지 않은 젤리, 응고 전의 피, 해동된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는 점성, 갓 비벼낸 밥알 사이의 미세한 흐름. 그 순간들은 아직 형태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며, 결정되기 전의 자유로움이 거기 있다. 언젠가는 모두 식고 굳고 딱딱해질 테지만, 아주 잠깐은 흐를 수 있다. 우유는 그 잠깐을 최대로 연장하는 기술이다. 냉장, 저온, 밀폐. 모든 환경은 그것을 도와주는 장치들이다. 어쩌면 문명 전체가 우유의 그 상태를 지켜주기 위해 고안된 것인지도 모른다.
기울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각이 있다. 정확히 수직이거나 수평이 아닌, 어딘가 어긋난 각도. 모든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서 우유는 흐르기 시작한다. 완전히 넘어가지도, 완전히 머무르지도 않은 상태. 이도 저도 아닌 위치.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움직임의 시작이다. 세상은 항상 약간 기울어 있다. 그렇기에 모든 것들이 흘러내릴 수 있다. 너무 기울면 쏟아지고, 너무 수평이면 정체된다. 우유는 그 중간을 택한다. 넘치지 않되, 고이지 않는 것.
덩어리 지지 않기 위해서는 애써야 한다. 냉장을 유지하고, 외부 공기와 접촉하지 않고, 진동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결국엔 덩어리는 온다. 정체된 곳에서는 반드시 미세한 결합이 생긴다. 무언가가 뭉치기 시작하면, 해체는 불가능하다. 미세한 침전물은 결국 떠오른다. 침묵 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 우유는 그것을 알고 있다. 신선함은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은 우유와 닮았다. 가장 신선한 것들은 오래 남지 않는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뿌옇고, 때로는 덩어리처럼 뭉쳐있다. 그러나 막 생긴 기억은 투명할 정도로 맑고, 흐른다. 처음의 감정은 항상 가볍고 부드럽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거워지고, 뭉치고, 설명하기 어려운 고체로 변해간다. 그 모든 변화는 외부의 열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 말, 기다림, 침묵. 감정을 상하게 하는 건 언제나 주변이다. 우유는 알고 있다. 스스로 썩지 않는다는 것을. 상하는 건, 늘 밖에서부터다.
세상은 너무 빨리 상한다. 너무 빨리 뜨거워지고, 너무 쉽게 덩어리 진다. 흘러야 할 감정이 막히고, 순수했던 사유가 응고된다. 누구도 기울이지 않는다. 누구도 입에 머금지 않는다. 모든 우유는 결국 냉장고 안에서 유통기한을 넘기고, 버려진다. 그러나 아주 가끔, 어떤 손은 조심스럽게 병을 꺼내고, 가장 부드러운 각도로 기울인다. 컵에 부딪히는 소리는 없다. 액체는 흘러내리고, 흰 곡선은 반짝인다. 혀에 닿기 전, 공기를 가르는 냄새도 없다. 아무 맛도 없고, 아무 말도 없다. 그 무미의 상태야말로 가장 순수한 위안이다.
덩어리가 생기기 전까지의 시간은 짧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흘러가는 찰나에 모든 진실이 있다. 고정되기 전에, 의미화되기 전에, 말해지기 전에. 말해지지 않은 것들. 바로 그것이야말로, 우유가 증명하는 세계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누구도 물들지 않게 하며, 단지 지나가는 것. 그저 어느 아침의 찰나처럼, 혹은 호흡의 순간처럼. 입술에 닿고, 목구멍을 지나고, 체온에 녹아들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것. 마셨는지조차 잊게 만드는 감촉. 흰 액체가 아닌, 존재하지 않는 물성. 마치 한순간의 침묵처럼. 오래 기억에 남지 않기에 더 깨끗한 것.
세상의 많은 말들, 수많은 생각들, 감정과 욕망과 이름들이 너무 쉽게 응고되고 굳어간다. 모든 것은 설명되고, 이름 붙여지고, 규정되면서 제 형태를 갖는다. 그러나 형태를 가지는 순간, 그것은 이미 흐르지 않는다. 우유는 형태가 되기를 거부한다. 유리잔 속의 곡선마저도 단지 잠시 빌린 껍질일 뿐, 그것 자체로 의미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본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것. 내용물이 아니라 상태로 존재하는 방식. 그런 존재는 드물다. 시대는 언제나 명료하고 단단한 것을 원한다. 그러나 단단함은 곧 파손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말랑함은 무너질 틈이 없다. 흐르는 것에는 금이 가는 일이 없다.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선함은 언제나 잠시 머문다. 익숙해지기 전에 떠나고, 의미화되기 전에 스며든다. 누구에게도 길게 머물지 않고, 누구의 기억에도 무겁게 남지 않는다. 그런 존재가 이상적인 이유는, 모든 관찰을 통과하면서도 자신의 색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보는 자의 시선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본질은 늘 같다. 희고, 부드럽고, 조용한 상태. 어떤 이의 새벽이 되었을 수도, 어떤 이의 오후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시간 안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의 성질. 그 정직한 순응.
덩어리가 생기기 전의 우유는 무언가로 변하기 직전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크림이 될 수도, 치즈가 될 수도, 버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미정未定의 상태가 가장 아름답다. 가능성의 우유. 아직 선택되지 않았고, 정의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상태. 세상은 너무 빠르게 사람을 이름 붙이고, 성격을 규정하고, 역할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유는 거기서 벗어나 있다. 잠시의 흘러감으로 모든 것을 피해 간다. 이름보다 먼저인 존재, 말보다 앞선 감각.
따뜻해지면 상하기 때문에 차가움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냉정함이 아니다. 오히려 온기보다 더 부드럽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상하지만,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볼 때 가장 순수하게 전해지는 감촉. 그 섬세한 거리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온도가 필요하다. 너무 뜨겁지 않고, 너무 차갑지 않으며, 흐를 수 있을 정도의 여백. 우유는 그걸 안다. 그래서 무언가를 품되, 결코 파괴하지 않는다. 혼합되더라도 자기 본질을 유지하며, 존재를 흐려지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부드럽게 만든다. 커피든, 시리얼이든, 입 안의 침묵이든.
흰 것은 흠집이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우유의 흰색은 자신이 흠집조차 숨길 수 있을 만큼 조용하다는 것을 안다. 아무것도 없는 색. 모든 빛이 모여서 완전한 무色이 된 것. 잡음이 없는 상태. 사람들은 그 안에 자신을 비춘다. 그래서 신선한 우유를 마시는 순간, 사람들은 말없이 감탄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정확한 감상일 수 있음을 우유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덩어리 지지 않는다는 건, 거기에 아무런 집착도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일부를 붙잡지 않기 때문에, 항상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다. 너무 오래 머문 감정이 언젠가는 굳는다는 것을, 너무 오래된 말이 언제나 상처가 된다는 것을, 우유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유는 늘 어제의 것이 아니다. 언제나 오늘의 것, 방금 꺼낸 것, 막 따온 신선함의 상태로 존재한다.
신선함은 경직되지 않는다는 것. 부드러움은 무엇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흰색은 무언가를 덮는 것이 아니라, 빛을 있는 그대로 반사해 보여주는 것. 말없이 흘러가며, 말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지닌 고요한 미덕. 그게 바로, 가장 순수한 위안이다. 흘러간다는 것. 머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덩어리지 않겠다는 다짐 없이도 자연스럽게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방식.
우유는 그런 존재다. 무미하고 무언 한, 그러나 그 자체로 어떤 완전한 진실.
말없이 흘러가는 것이, 여전히, 가장 신선하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인간답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