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야 들리는 시간, 젖은 감정의 기슭
젖병 속 온도가 미지근할 때, 시간은 무너지는 벽돌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초침이 밀려서 흐르는 틈마다, 목구멍 깊숙이 남아 있는 울음이 걸렸다. 방 안에는 낮은 조도의 조명과 어딘가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었지만, 어느 쪽도 존재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 중심은 비어 있었고, 젖은 수건처럼 말릴 수 없는 축축한 고요가 바닥과 가슴 사이에 눌려 있었다.
얼룩말 무늬의 수유 쿠션 위로, 미세한 떨림을 가진 손이 내려왔다. 손바닥의 선들은 수맥처럼 얽혀 있었고, 그 끝은 작은 입술로 연결되었다. 입술은 무언가를 삼켰다. 무언가를 잃었다. 삼키면서 지우고, 지우면서 다시 태어나는 리듬. 수유는 기도와 같았고, 기도는 침묵 속에서만 닿았다.
수유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과거에서 미래로가 아니라, 경험에서 감각으로, 감각에서 무감으로. 피곤이 뼈 안에 고이면 관절은 조용히 삐걱거린다. 그 소리도 이곳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앨리스는 더 이상 시계토끼를 따라 뛰지 않고, 벽에 기댄 채 눈꺼풀을 기운 채로 꿈을 되새긴다. 낯선 말들은 혀 아래서 부풀다 이내 녹아내리고, 의미는 늘 반대편에서 손짓한다. ‘수유 중’이라는 말은 이따금 현관문에 붙은 메모처럼 존재하지만, 그 안쪽에선 더 많은 언어가 생략된다.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감각은 단절이었다. 탯줄이 끊어진 이후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누군가는 멈춘다. 멈춘 자리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는 기묘하게 정적이며, 움직이지 않음으로써만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이상한 나라의 문은 이미 열렸고, 다시 닫히지 않았다. 젖은 천의 무게가 시간이 되었고, 시간이 고요를 두드릴 때마다 누군가의 뺨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앨리스는 더 이상 의자에 앉지 않고, 공간에 눌려 있었다. 상실은 반복될수록 의식의 구멍을 넓혔고, 그 구멍은 오래전부터 이 방 한가운데 있었다.
밤은 두 겹으로 접힌다. 외부의 어둠이 창을 덮고, 내부의 어둠이 눈꺼풀을 덮는다. 그 틈에서 들려오는 울음은 한 생명의 것이기도 하고, 한 존재의 잔여이기도 하다. 앨리스는 몸을 세우며 중심을 바꾸려 하지만, 중심은 더 이상 몸에 있지 않다. 외부로 밀려난 중심은 새벽의 한기 속에서 뚜렷해지고, 수유 중인 손목을 지나 낯선 이마 위에 내려앉는다.
어느 날은 거울을 마주하는 일이 무의미했다. 반사된 얼굴 속에서는 시간과 자아가 분리된 채 각자의 방식으로 흐르고 있었다. 한쪽은 방금 수유를 마친 눈으로, 다른 쪽은 이미 잠든 무표정으로. 거울 속에 존재하는 앨리스는 더 이상 토끼굴을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는 그곳에 머물며 토끼굴 자체가 된다. 누군가가 빠져들 수 있는, 끝이 없는 통로로.
마음은 유선처럼 얇고, 잘 찢어진다. 찢어진 마음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대신 고통은 흐름으로 변한다. 흐름은 다시 접촉으로 바뀌고, 접촉은 어느 순간 타인과의 경계를 지운다. 경계가 사라질 때, 앨리스는 그제야 비로소 앨리스가 된다. 정체성은 역할이 아니라 부재의 그림자로 생긴다. 그 그림자 안에 눈이 있고, 입술이 있고, 젖은 손끝이 있다.
비눗방울처럼 부풀었던 감정은 일정 시간 후 반드시 터진다. 그 터짐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 앨리스는 수유 중이다. 젖은 방, 젖은 꿈, 젖은 의자, 젖은 심장. 모든 것은 젖고 나서야 자신을 드러냈다. 말라 있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고, 마른 마음은 허상에 불과했다.
수유는 반복이 아니다. 반복처럼 보이는, 한 번도 같았던 적 없는 일회성의 연속. 같은 포즈, 같은 의자, 같은 시간에조차 감각은 매번 조금씩 어긋났다. 그 어긋남에서 존재는 증식했고, 앨리스는 매번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엔 더 작은 방이 있었고, 그 방엔 더 작은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 안에서 들리는 젖 삼키는 소리. 앨리스는 그 소리로부터 태어났다.
모든 기억은 젖어 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이마가 아닌 가슴에 있고, 가슴보다 더 오래된 기억은 혀의 아래에 있다. 수유는 기억의 방식이다. 입과 입이 닿아 있는 동안, 시간은 말이 아닌 체온으로 전달된다. 전달된 체온은 다시 젖이 되고, 젖은 잊힌 감정을 깨운다. 감정은 몸을 관통한 후에야 사라진다.
어느 여름날 오후, 창문은 열려 있었다. 바람은 방을 스치듯 지나갔고, 커튼은 입술처럼 떨렸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수유 중이다.” 아무도 반문하지 않았다. 문장은 진술이 아닌 사실이었다. 이상한 나라는 방 안에 있었고, 이상하지 않은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릎 위에서 흐르던 생명은 점차 무게를 얻었고, 무게는 온기로 바뀌었다. 온기는 시간의 단위가 아니었다. 시간은 점점 더 얇아졌고, 얇아진 만큼 더 넓게 퍼졌다. 방은 크지 않았지만, 앨리스가 느낀 공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 크기를 바꾸었다. 한 번은 바늘구멍 같았고, 한 번은 성당처럼 깊었다. 벽지의 패턴이 변할 때마다, 감정도 질감을 바꾸었다.
엄지와 검지로 잡힌 젖꼭지의 궤적에는 말보다 진한 언어가 남았다. 언어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수유가 끝난 자리에는 침묵이 남았고, 침묵은 누군가의 호흡을 따라 방 전체로 번졌다. 시간은 다시 미지근했다. 젖은 공기 속에서 의식은 해체되고, 몸은 더 이상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앨리스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벽에 그려진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정지된 시계 안에서만 가능했던 시간. 수유는 멈춤의 기술이었다. 멈춰야만 들을 수 있는, 멈춰야만 흘릴 수 있는. 모든 감각은 멈춘 후에야 날카로워졌고, 멈춘 후에야 비로소 살아 있었다. 앨리스는 그 멈춤 안에 살았다. 이상한 나라란 그 멈춤의 다른 이름이었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시선 하나가 그녀를 따라왔다. 그 시선은 어린것의 것이었고, 동시에 오래된 것의 것이었다. 수유는 양방향이었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뒤섞인 채, 누구도 완전히 주지 않았고, 누구도 완전히 받지 않았다. 그것은 끊김 없는 순환이었다. 앨리스는 순환의 시작점도, 끝점도 알 수 없었다.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는 아직 수유 중이었다. 젖은 시간은 마르지 않았고, 말라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젖은 것들은 생명을 증명했고, 말라붙은 것들은 결국 사라졌다. 앨리스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고요는 다시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고, 심장은 여전히 누군가의 입술 아래서 박동 중이었다. 이상한 나라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다만, 한 겹 더 깊어질 뿐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