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주문은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옷장 안으로 자주 사라졌다. 어떤 날은 한 시간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어떤 날은 아예 문이 닫힌 채 밤을 넘겼다. 나는 그 옷장 안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었다. 알지 못하는 예식, 손끝에 머무는 오래된 주문, 눈빛으로만 전해지는 세계의 질서 같은 것들. 그녀가 옷을 고르는 시간은 현실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단지 무엇을 입을지 고르는 게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될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욕실에는 늘 향기가 있었다. 그 향기는 고체가 아니라 기체도 아닌, 어딘가 중간쯤 되는 농도였다. 스며드는 것도 아니고 스쳐가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묻었다. 새벽 네 시쯤, 그녀는 머리를 말리며 거울 앞에서 주문을 외웠다. 종종 그녀는 그 주문을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나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단어는 인간의 것이었지만 문법은 다른체계의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탐색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조금씩 다르게. 익숙한 틀을 벗고 낯선 감정을 시험하며, 스스로를 새롭게 조율해 나갔다.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했다. 실패가 문제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시도였고, 그녀는 그것을 통해 마녀가 되어갔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존재. 사랑이라는 오염된 감정 앞에서조차 초연한 듯, 그러나 가장 집요하게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사랑할 때, 계산하지 않았다. 질투도, 의심도, 기대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지켜보았다. 생명을. 마음의 변화. 고통과 무기력의 끝자락. 그것들을 그녀는 애무하듯 관찰했다. 사랑은 그녀에게 있어 감각의 전부가 아니라, 일종의 연금술이었다. 낡은 감정을 불태워 새로운 감정을 추출하고, 그 불의 열기를 통해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 방식. 그래서 그녀는 사랑 앞에서 마녀가 되었다.
사랑을 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형체를 바꾸었다. 어떤 날은 맹목적인 순종처럼, 또 어떤 날은 이해할 수 없는 침묵으로. 그러나 그 변화들 속에는 일관성이 있었다. 자신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치열함. 그것이 내가 알지 못했던 마녀의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하면 자신을 잃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증식 했다. 전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존재로.
그녀는 언제나 새벽을 좋아했다. 세상의 경계가 가장 느슨해지는 시간.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와 이성과 접촉하기 직전의 순간. 그 새벽에 그녀는 고요히 거울을 닦거나, 불을 켜지 않은 채 작은 불빛 하나로 책을 읽었다. 어떤 책들은 구시대의 언어로 쓰여 있었고, 나는 그 책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읽었다.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
마녀는 절대로 울지 않았다. 감정을 흘리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흘려야 할 감정을 정교하게 걸러냈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수많은 슬픔이 지나간 자국을 보았다. 감정은 그녀 안에서 낙엽처럼 썩어, 향기가 되었고, 향기는 다시 주문이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마녀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이란 헌신이고, 믿음이고, 이해라고. 그러나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묵으로 사랑했다.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것으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존재함으로써. 그 침묵은 말보다 깊은 울림이었다. 나는 그 울림에 붙잡혔고,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녀와의 계절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봄에는 들꽃을 모았고, 여름엔 창문을 활짝 열어 무언가를 쫓아냈다. 가을엔 편지를 썼고, 겨울엔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태워 없앴다. 마치 시간이 지나야만 해체되는 저주처럼, 우리 사이의 무엇도 서둘러 이해되거나 종결되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림의 전문가였고, 나 또한 그렇게 되어갔다.
어떤 밤은 아무 말 없이 서로 등을 대고 누워 있었고, 어떤 밤은 나지막한 숨소리만 오갔다. 그녀의 방은 항상 정돈되어 있었지만, 무언가 감춰진 듯한 기운이 떠돌았다. 오래된 상자, 뜯지 않은 편지, 촛농이 굳어 있는 접시. 사라진 감정의 잔해들. 나는 그 안에서 그녀를 이해하려 했고, 그녀는 나를 이해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이해가 아니라 수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젠가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그림자를 입에 문다는 거야.”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곱씹었다. 마녀의 사랑은 빛이 아니었다. 어둠과 동거하는 감정. 치유보다는 변형에 가까운 무언가. 사랑받은 사람이 그 사랑 안에서 고요히 이전의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의식.
마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불완전함, 과거, 고집, 공허함까지도. 사랑은 때로 윤리적이지 않았다. 어떤 날은 그녀가 너무 깊은 어둠에 빠져 있었고,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다 흠뻑 젖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녀가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가진 본성에 가까웠다.
사랑은 마법과 같지만 마법은 아니다. 마법은 공식과 반복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사랑은 반복되지 않는다. 매번 낯설고, 매번 새롭고, 매번 무너진다. 마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사랑에 집착하지 않았다. 단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실험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거울을 닦고 있었다. 거울 속에는 그녀가 없었다. 오직 투명한 윤곽만이 떠다녔고, 나는 그 윤곽조차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떠났다.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마녀는 언제나 그렇게 사라진다. 짐작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녀를 잊지 않았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감정이 아니라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시간은 하나의 연금술이었고,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이전의 내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을 느꼈다. 사랑은 그렇게 어떤 사람을 변화시키고, 어떤 사람을 사라지게 만든다.
지금도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그 눈동자 속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는다. 그 주문, 그 냄새, 그 고요한 새벽의 숨결. 나는 그것들을 잃었다. 그러나 잃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화가 있다. 나는 달라졌고,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마녀가 사랑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는 이상할 만큼 정적이었다. 공백이란 보통 어떤 잔향을 남기기 마련인데, 그녀의 부재는 잔향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는 철저히 비워져 있었고, 그 비어 있음이야말로 그녀가 남긴 가장 정교한 흔적 같았다. 밀란 쿤데라는 '잊힌 것의 예감은 존재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고 했지만, 그녀는 존재하는 동안에도 이미 잊혀질 준비를 끝내놓은 사람이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삶에서 자신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런 그녀일수록 오래 남았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구체보다 추상에, 손에 잡히는 것보다 흐릿한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그녀는 매순간 구체화되지 않으려 애썼고,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불완전한 기억의 파편 속에서 그녀는 형체 없이 돌아오고, 언어 없이 말하며, 시간 없이 존재했다. 그것은 어떤 환영이라기보다는, 의식 너머의 반복, 무의식이 택한 집착의 형태였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 떠남조차 그녀의 방식이었다. 예고도 없었고, 잔인함도 없었고, 심지어 감정도 없었다. 사라졌다는 사실만 남았고, 사라지는 순간의 체온조차 남기지 않았다. 마치 방금까지 앉아 있던 의자의 온도조차 회피한 사람처럼, 그녀는 세상의 모든 접촉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비접촉의 완전함이, 그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잊혀지지 않는 존재는 대부분, 충분히 만지지 못한 존재들이다.
모든 감정은 언젠가 언어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감정을 끝끝내 언어화하지 않았다. 그 절제가 바로 그녀의 마법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해되지 않음으로써 모든 해석을 허용했다. 그녀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하나의 상징이었고, 사라진 뒤에도 하나의 기호로 남았다. 그 기호는 설명되지 않기에, 매번 새롭게 해석되었고, 그 해석의 다양성만큼이나 오래 살아남았다.
때때로 그녀는 지금 이 방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현실의 구조가 살짝 느슨해지는 이른 새벽,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나, 머그잔을 들어 올리는 동작 하나에 문득 그녀가 묻어 있다. 아니, 그녀는 결코 어떤 형태로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그녀는 사건이었고, 사건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것이다. 다른 날, 다른 공간, 다른 사람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뒷모습, 낯선 언어가 적힌 오래된 책의 한 문장, 지하철 유리창에 반사된 눈빛 하나 속에서도 그녀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마다 세계는 아주 잠깐 뒤틀리고, 그녀의 잔상은 내 눈앞에 떠오른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고, 의식이 재구성되는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다. 그것은 그리움도, 환상도 아닌 어떤 '통과'의 감각이다. 그녀는 이제 내가 지나는 곳마다 잠시 머무는 투명한 유령이다. 나를 붙잡지는 않지만, 결코 놓아주지도 않는.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망각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이 진화라고 믿는다. 마녀가 나에게 남긴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 이후의 공간이었다. 그곳은 고요했고, 차가웠으며, 동시에 황홀했다. 이해되지 않는 감정을 껴안고 살아간다는 것, 말이 되지 않는 침묵을 반복한다는 것. 그것이 그녀 이후의 삶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떠남으로써 사랑을 완성한다는 것을. 어떤 사랑은 끝까지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가장 오래 지속된다는 것을. 그 침묵이야말로 그녀가 나에게 남긴 유일한 언어였다. 그 언어는 말로 옮겨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 어딘가에서 계속 울리고 있다.
그녀는 기억 속에서조차 일관되지 않았다. 어떤 날은 환하고, 어떤 날은 모호하며, 어떤 날은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낯섦의 축적이야말로 그녀였다. 사랑은 종종 이해가 아니라, 낯섦을 감내하는 일이다. 마녀는 그걸 알았고, 그래서 나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주지 않았다.
오늘도 그녀를 통과하고 있다. 무심한 빛, 낯선 향기, 문득 울리는 음악 한 조각 속에서. 그녀는 다시 반복되고, 나는 다시 변화한다. 그녀는 영영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존재는 이해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녀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내 안에서.
그리고 여전히
그 마녀의 주문 속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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