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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이 장면으로 살아날 때.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by 적적

어떤 기억이나 장면은 땅속 깊은 곳에 묻어두어도 처음 묻었을 때의 기억과 혹은 묻을 당시는 몰랐지만 떠오르고 나면 도무지 돌아설 수 없어 기어코 파내어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일 수도 있고 농담처럼 흘려보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구에겐 반드시 지켜내거나 한 번쯤 다시 보고 싶은 추억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 다 그 순간을 잊고 싶지 않다는 굳은 의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실한 새끼는 오지 않겠다는 거야?


아니…. 도무지 얼마나 많은 돈과 집과 땅과 청약이 앞을 가로막고 선다고 해도 이런 날엔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노벨상이라구 게다가 문학상….


밤이 되자 전화가 계속 오고 있었습니다.


우린 서로의 시간 속에서 캐낸 기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 일곱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같이 모이는 시합평을 계속할 수 있을지 서로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꽤 빨리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담배 한 갑을 다 피울 동안 합평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헤어지기 직전에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 그때 만나서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자!!

그날은 오지 않거나 모두 잊혀진 기억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벨상 소식을 듣고 묻어두었던 기억 한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한 친구의 전화로 그런 일을 기억하는 것이 나의 착각은 아니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그 장면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 내일 밤에 보자.

그리고 다섯 명이 모이기로 하였는데 한 명은 일이 너무 바빠서 참석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 서운함에 계속 전화를 걸게 되었습니다.

나쁜 놈이었구나.


12시가 넘고 1시가 다가올 무렵 갈 수 없다고 오지 않겠다는 친구가 들어섰습니다. 모여있단 친구들 모두가 일어서 마지막으로 온 친구를 반겨주었습니다.


다 모이니 이리 좋구나.


한강... 한강... 한강...


그 어린아이들은 이제 주변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건배를 하였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꿈 속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살고 있으나, 살아있는 동안 맛본 놀랍고 자랑스러운 기억을 감탄하며 속삭이듯 꿈에 그리던 날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10월 11일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Zz9uYdj_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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