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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은 얼마나 오랫동안 행복했을 것 같니?

밤이 되면 더 예쁘긴 했었지.

by 적적



이 이야기는 친구 J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예뻤습니다. 동네에서 제일 눈에 띄게 예쁜 아이였어요. 길고 가는 다리와 팔을 지녔으며 아무도 그녀에게 쉽게 말을 걸 수 없을 눈빛을 가지고 있었죠. 물론 뒤를 돌아보게 할 만큼 흰 피부와 머릿결을 지녔었죠.


그녀에게 한번 빠진 사내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헌신하였습니다. 그녀의 말수도 별로 없었지만,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을 할 때는 그녀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사내들의 귀가 쫑긋 했어요. 그리고 그녀가 서울로 첫 직장을 다니며 낮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 우리는 지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묻곤 하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아직도 잔다.... 였죠.


그녀는 주말이면 아침부터 노을이 지는 시간 혹은 밤이 지나도록 자고 있었어요. 진위를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저주에 걸린 사람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고 전해졌어요.

20대 중반이 되자 그녀는 동네에서 종적을 감췄으며 동네에서 그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을 때 작은 사내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어요. 그녀를 닮아서 아니 그녀 만을 그대로 닮아있어서 아주 흰 피부를 가진 사내아이를.


그녀는 다시 서울로 직장을 다녔었고 아이는 그녀 어머니 손에 자라났어요. 볼 때마다 탈피를 계속하며 자라났고 우리는 그 작은 아이에게 무릎을 꿇고 말을 건넸으며 돌아서며 검은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쓰다듬어 주었어요. 아이는 고양이처럼 손길에 고개 짓을 하며 눈을 감고 돌아서 가는 사람들에게 하얀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J는 여전히 아름다웠죠. 그녀의 아름다움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가 그 근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녀는


또 잠들기 시작했어요.


다시 사라진 그녀는 이번엔 작은 계집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녀의 집 아니 그녀 어머니의 집엔 그렇게 세 명의 여자아이와 한 명의 사내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서로 성씨가 다른 아이들은 그 작은 집에서 사이좋게 지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네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워냈었죠.

J는 매달 말 일이 되면 아이들을 키우기에 아주 넉넉한 돈을 그녀 어머니의 통장에 입금했지만, 그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녀 어머니는 말일 이면 살아있는 딸의 생사 만으로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동네에선 J를 백설 공주네라고 부르곤 하였지만, 사내아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때 이미 키가 170cm가 훌쩍 넘었고 세 살 터울의 여자아이들은 그 하얀 피부에 밤이 되면 더 붉어지는 입술을 지닌 J를 자꾸만 떠오르는 게 하는 아이들을 난쟁이 취급할 수도 없게 되었죠.


사랑 따위 바란 적은 없었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를 지닌 건 내 잘못일지 모르지만, 약속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고 헌신은 버거웠을지도 몰라. 그들의 약속은 늘 어긋났어. 사랑을 바란 적 없지만, 사랑을 바라게 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건 견딜 수가 없었어.


각기 다른 성(姓)의 아이들은 각기 다른 곳에 살며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산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명절이 되면 패션잡지에서 막 튀어나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J어머니의 집으로 모여들었죠. 할머니라는 말은 본디 모든 것을 허락하는 말일지도 모르잖아요.


각기 다른 아이들은 제 아비의 식성만 닮아 온종일 명절 음식을 해야 하는 J어머니는 계속해서 부족한 음식 재료를 사러 마트를 들락거릴 거리게 되겠죠.


동네 사내아아들은 그 집 앞을 서성이며 J를 기다리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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