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과 욕망이 닮아가는 순간.
도망이라는 단어는 낯설게 들리면서도 동시에 가장 본능적인 언어다. 두 발이 땅을 박차고, 폐가 터질 듯 공기를 들이마시며, 심장은 맹렬하게 고동친다.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은 채 몸이 스스로 반응하는 순간, 그것이 곧 도망이다. 불길 속에서 달려 나오는 아이, 어두운 골목에서 휘두르는 그림자를 피해 달아나는 몸, 새벽녘 기차역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는 청춘. 도망은 늘 삶의 경계에서 태어나고, 그 경계 위에서만 완성된다.
그러나 도망은 단순한 거리 이동이 아니다. 발걸음이 멀리 간다고 해서, 과연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손목에 차인 시계처럼, 도망은 어디서나 존재를 따라붙는다. 그래서 도망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무게의 문제다. 하루의 의무와 실패, 말과 시선이 얹혀 점점 무겁게 짓누르는 어깨. 그 무게를 덜어낼 수 있다면, 설령 좁은 골방 구석이라 해도 그곳은 도망의 장소가 된다.
도망은 공간과 결탁한다.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 시간의 흐름에서 비껴 난 자리. 버려진 놀이공원에는 도망의 공기가 짙게 깔려 있다. 철제 난간은 녹슬어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멈춰버린 회전목마는 금이 간 말의 목을 흔들며 바람에 삐걱거린다. 바닥에 흩어진 색 바랜 티켓 조각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린다. 무심히 발을 옮기면, 거대한 고무 인형이 기울어진 채 바람에 흔들리다 쓰러진다. 그 장면은 현실이라기보다 꿈의 잔해처럼 보인다. 거기서 달리는 사람의 뒷모습은 추격자도, 목적지도 없다. 그저 버려진 공간의 무심한 눈동자 속으로 녹아드는 것뿐이다.
도망은 폐허와 잘 어울린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공간에는 묘하게 느슨한 시간이 감돈다. 낡은 영화관의 붉은 좌석에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 누구도 묻지 않는다. 언제 왔는지, 왜 앉아 있는지. 스크린은 닫혀 있지만, 천장에서 떨어진 조명 조각 사이로 희미한 빛이 흩어진다. 객석 깊숙한 어둠은 마치 몸을 삼켜줄 듯 조용히 퍼져 있다. 도망은 이런 어둠 속에서 안도한다. 존재가 지워지지 않아도, 최소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순간.
새벽의 해안도로는 또 다른 도망의 무대다. 아스팔트는 밤새 내린 바람에 젖어 있고, 길가의 풀잎에서는 소금기 섞인 습기가 뿜어져 나온다. 파도는 멀리서 낮게 울부짖으며 몰려온다. 가로등 불빛은 물결 위에 길게 찢어져 흔들린다. 발자국이 모래 위에 찍히자마자 파도는 그것을 삼켜버린다. 흰 거품이 씻어내고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그 누구도 걸어가지 않았던 듯 깨끗한 모래만 남는다. 도망은 결국 지워지는 일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도망의 형식일 것이다.
현실은 지워짐을 허락하지 않는다. 방 안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문고리에 걸린 낡은 코트, 서랍 속 구겨진 영수증, 침대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펜, 전화기 속 기록. 이 사소한 물건들이 무심히 존재를 증명한다. 도망하려는 발걸음은 이 증거들에 발목을 잡힌다. 도망은 늘 실패한다. 사라지려 하지만, 발각되고, 다시 달아나려 하지만, 또 다른 흔적이 남는다. 결국 도망은 반복되는 연습일 뿐이다. 완성되지 않는 영원한 예행연습.
도망은 꿈꿀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도망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직감 하나로 충분하다. 변명이나 설득이 필요 없다. 도망은 가장 순수한 직관의 언어다. 몸이 먼저 알고, 그다음에야 마음이 따라간다.
도망은 종종 시간과 결부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충동. 이미 흘러가버린 말, 되돌릴 수 없는 실수, 끝나버린 사랑. 그러나 시간은 단 한 번도 도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과거는 닫힌 문 뒤에 잠겨 있고, 미래는 아직 열리지 않은 창 너머에 묶여 있다. 도망은 언제나 현재라는 좁은 회랑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에 취하거나, 음악 속에 잠기거나,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것은 시간으로부터 잠시 도망치는 은밀한 방식이다.
꿈속에서 도망은 가장 완벽하게 실현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를 달리거나, 낯선 도시의 지붕 위를 넘나들거나, 얼굴 없는 군중 속을 헤치고 달린다. 추격자는 늘 가까이 있지만, 결코 잡히지 않는다. 발걸음은 가볍고, 숨은 끝없이 이어진다. 깨어나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남아 있는 것은 몸에 밴 피로와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뿐이다. 그래서 꿈은 도망의 가장 충실한 동반자다.
도망은 공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빛의 문제이기도 하다. 낮에는 어디도 완벽한 도망의 장소가 될 수 없다. 빛은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은 다르다.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틈, 어둠이 갈라진 그 사이. 거기서는 존재가 희미해지고, 흔적은 금세 지워진다. 도망은 늘 어둠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종종 도망을 부끄럽게 여긴다. 그러나 도망은 삶의 연장이자 저항이다. 달아나는 발걸음은 언제나 증명한다. 아직 살아 있고, 아직 반응하며, 아직 끝내지 않았음을. 어디로 도망가면 좋을까. 이 질문은 결국 어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도망의 끝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상태는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격렬하게 증명하는 순간이다. 심장은 더 빠르게 고동친다. 숨은 도망의 긴장 속에서 끊기는 것이 아니라, 입술과 입술이 겹쳐지는 순간에 터져 나온다.
도망치던 발걸음은 결국 어떤 방으로 밀려들어가며 멈추고, 그 방 안에서 몸은 더 이상 달아나지 않는다. 땀은 공포의 흔적이 아니라, 서로의 피부 위에서 번져가는 짠맛으로 바뀌고, 피는 상처가 아니라 충혈된 눈동자 속에서 불타오른다. 도망은 추격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욕망의 예행연습이었던 것이다. 흔적을 지우려던 발걸음은 결국 서로의 몸에 가장 깊은 흔적으로 남는다. 어둠은 숨는 장소가 아니라, 서로를 끝까지 삼켜내는 배경이 된다. 어디로 도망가면 좋을까.
질문은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무너져도 좋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도망의 끝은 고요가 아니라 불길이다. 서로의 몸을 태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끝내 사라지면서도 가장 뜨겁게 존재를 증명하는 불길, 그 순간.
도망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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