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순간이 여전히 빛을 흘려보내는 방식.
여름은 언제나 완결되지 않는다. 끝났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다시 나타난다. 마치 한 번 치운 줄 알았던 깨진 유리 조각이 어느 구석에서, 또 다른 빛의 각도로 드러나는 것처럼. 손가락 끝에 박히는 날카로움은 이미 지나간 계절이 여전히 여기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 여름은 지나가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고, 귓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울리는 파편 같은 잔향을 남긴다.
여름의 표면은 매끄럽고 화려하지만, 그 속은 불안정하게 갈라져 있다. 벽에 드리운 그림자가 짧아질수록 열기와 함께 감정의 조각도 흩어진다. 뜨거운 낮과 눅눅한 밤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마음은 예리하게 쪼개진다. 유리처럼 투명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상태. 사람들은 여름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하고, 망각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름이 진짜로 닮아 있는 것은, 오래된 방 안에서 끝내 다 치우지 못하는 파편들이다.
바닥에서 유리 조각을 발견하는 순간은 언제나 불현듯 찾아온다. 아무렇지 않게 맨발로 걸어가다, 발바닥에 스치는 작은 감각으로 알게 되는 순간. 빛이 그 조각에 닿으면 날카로운 반짝임이 튀어나온다. 손끝으로 집어내려 하면 조심스레 움켜쥘 수밖에 없다. 그때의 주저함, 그리고 미세한 통증이야말로 여름의 본질이다. 무언가를 잃고 난 자리에서,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감각이 다시 피어나는 계절.
여름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땀에 젖은 셔츠,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잠 못 이루는 밤. 그러나 불편함은 동시에 어떤 관능을 품고 있다. 여름의 밤거리를 걸을 때, 모든 것이 지나치게 가까워지고, 지나치게 느껴진다. 작은 바람에도 살결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쩌면 여름은 불편함이라는 껍질 속에서만 드러나는 은밀한 욕망의 계절일지도 모른다. 갈라진 유리 파편이 단순히 위험한 물질이 아니라, 빛을 산란시키며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깨진 유리는 기억의 은유이기도 하다.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여름이 되면 다시 튀어나온다. 바닷가에서 건네던 말, 뜨겁게 달궈진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어둑한 극장에서 마주쳤던 손등의 열기. 모두가 한 번 버려진 조각 같았지만, 여름은 그 파편들을 불쑥 꺼내 빛에 비춘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어 있을 뿐이다.
여름은 또 다른 방식으로 파편을 만들어낸다. 유리창에 쏟아지는 폭우, 뜨겁게 내리 꽂히는 햇살, 공기를 흔드는 매미의 울음. 그것들은 연속된 파동이 아니라 잘게 쪼개진 순간들이다. 그 파편 하나하나는 날카롭고 짧지만, 전체를 이루어 계절의 질감을 완성한다. 매미 소리는 멀리서 들으면 하나의 합창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천 개의 날카로운 소음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여름은 늘 그런 방식으로 체험된다. 통째로 붙잡을 수 없고, 잘게 흩어져 살에 와닿는다.
파편은 늘 위험하다. 그러나 그 위험이야말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발밑에 조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걸음은 조심스러워지고, 시선은 세밀해진다. 여름은 무더위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만, 동시에 감각을 각성시킨다. 심장이 두드러지게 빨라지고, 호흡은 얕아진다. 바람 한 줄기에도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사랑의 순간이 그렇듯, 여름은 삶을 극도로 날카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깨진 유리의 파편을 끝내 모두 치워낼 수 없는 것처럼, 여름은 결코 완전히 정리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가을이 와도, 어느 모퉁이에서는 여름이 계속 발견된다. 옷장에서 꺼낸 반팔 티셔츠에서 묻어나는 땀 냄새, 차창에 스치는 햇살의 각도, 심지어 가을의 공기 속에서도 느껴지는 잔열. 그것들은 모두 여름의 조각들이다. 마치 오래 전의 말 한마디가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 박혀 남아 있듯이.
여름은 그래서 무겁다. 가볍게 흘려보내려 해도, 자꾸만 붙잡히고 만다. 그것은 치명적인 계절이라기보다는, 치명적으로 남아 있는 계절이다. 완벽히 잊히지 못하고, 완벽히 소유되지도 않는 순간들의 집합. 여름의 아름다움은 그 불완전함에 있다. 깨진 조각을 맞추려 해도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듯이, 여름의 기억은 언제나 불연속적이고, 그 자체로 균열을 품는다.
결국 여름은 사랑과 닮아 있다. 사랑은 늘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어도, 오래전에 깨진 파편처럼 잊지 못할 순간이 남는다. 손끝에 닿는 미세한 아픔, 그러나 동시에 빛나는 반짝임. 여름은 그러한 사랑의 은유다. 상처를 주면서도, 그 상처의 틈 사이로 빛을 흘려보내는 계절.
바닥에서 발견한 파편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여름의 모든 풍경이 뒤섞여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해변, 불투명한 땀의 냄새, 아직 꺼지지 않은 욕망의 불씨, 불면의 밤에 흘러나온 음악. 그것들은 모서리마다 다른 빛을 반사하며 눈부신 동시에 위태롭다. 파편을 버리려 해도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기억이 단순한 위험 이상의 의미를 품기 때문이다.
여름은 깨진 유리 파편을 바닥에서 계속 발견되는 순간과 같다. 한 번의 발견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다른 자리에서, 다른 빛으로 드러난다.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여름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는 듯 다시 나타난다. 결국 여름이란 계절은 기억과 욕망, 상처와 빛이 얽힌 집합체다. 매번 발을 베이고, 피를 흘리면서도, 사람들은 여름을 그리워한다. 왜냐하면 그 파편들 속에서만 비로소 생이 날카롭게 반짝이기 때문이다.
파편을 손에 쥐면, 그 속에서 수많은 풍경이 겹쳐 보인다. 바람이 식지 않은 저녁의 골목, 아직 식지 않은 체온을 머금은 시트, 어두운 극장 속 숨죽인 떨림, 불면의 밤에 창문을 흔들던 선풍기의 일정한 리듬. 그것들은 제각기 흩어진 장면 같지만, 파편의 모서리에 비칠 때 하나의 집합으로 번쩍인다. 그래서 버리려 해도 쉽지 않다. 위험을 알면서도 손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까닭은 그 파편이 단순히 상처를 남기는 조각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었던 생의 한 부분을 되살리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파편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 그것을 버린다는 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을 함께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름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가을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겨울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여름은 다시 발견된다. 파편처럼 불쑥 발밑에서 반짝이며, 사람을 잠시 멈춰 세운다. 그때마다 알게 된다.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삶을 날카롭게 각성시키는 감각의 잔해이며, 동시에 가장 은밀한 욕망을 반사하는 거울이라는 것을. 깨진 파편은 위험하고 아프지만, 그 빛 없이는 여름이 여름일 수 없다. 결국 여름이란 계절은 기억과 욕망, 상처와 빛이 얽혀 형성한 불완전한 조각들의 집합체다. 매번 발을 베이고, 피를 흘리면서도 사람들은 여름을 그리워한다. 왜냐하면 그 파편들 속에서만 삶이 가장 예민하게 반짝이고, 가장 날카롭게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름은 끝내 완결되지 않는 계절이며.
발견될 때마다 다시 살아나는 파편 같은 진실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