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고 흔적을 남긴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온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오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낙엽 한 장이 공중에서 방향을 잃고 떨어지는 순간이고, 어떤 이에게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며 미세한 소름을 일으키는 오후다. 또 다른 이에게는 돌연 어깨를 덮친 햇살의 무게다. 중요한 것은 가을이 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몸이 찔리듯 자각하는 순간이다. 가을은 예고 없이 상처처럼 도착한다. 고통이라기보다, 무뎌진 감각을 날카롭게 일깨우는 방식으로.
햇살은 더 이상 여름처럼 노골적이지 않다. 욕망을 강요하지도, 땀을 쥐어짜지도 않는다. 대신 은밀하게 스며든다. 피부를 얇게 관통해 혈관 속으로 번지고, 심장의 박동에 미세한 교란을 일으킨다. 호흡은 낯선 박자를 따라 흔들린다. 그 순간 몸은 투명한 용기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빛이 들어와 가득 차고, 다시 흘러나와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열도 아니고 빛도 아니다. 이름 붙이기 힘든 감정의 잔여다. 햇살은 외부에서 쏟아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빛이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순간, 비밀은 무너지고, 몸은 발가벗겨진 듯 투명해진다.
가을의 햇살은 옷보다 먼저 살을 벗긴다. 천 조각 하나 벗지 않았는데도 벌거벗은 기분을 주는 빛이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처럼 목덜미를 더듬고, 갈비뼈 사이를 스치며, 허리께로 스며들어 오래된 기억을 건드린다. 뼈와 뼈 사이를 파고드는 차가운 손길처럼, 빛은 과거를 밀어 올린다. 사람은 자신이 타자의 시선 앞에 놓였음을 깨닫는다. 숨길 수 없는 진실이 피부 아래서 흘러나온다. 그것은 미처 치유되지 못한 사랑의 잔여일 때도 있고, 시간에 덮였으나 사라지지 않은 상처일 때도 있다. 가을은 존재를 이렇게 노출시키며, 잔혹할 만큼 관능적이다.
길 위의 그림자는 여름보다 길다. 오후가 짧아질수록 그림자는 질량을 늘린다. 나무는 땅에 더 깊은 발자국을 남기고, 건물은 몸을 늘려 도로를 뒤덮는다. 신호등은 기묘한 십자가를 아스팔트 위에 드리운다. 그림자는 언제나 본래의 몸보다 길고, 무겁다. 그것은 늘어진 사본이 아니라, 시간을 이식받은 분신이다. 그림자는 존재의 무게를 말한다. 그것은 곧 시간의 그림자다.
시간은 가을에 이르러 바늘이 된다. 여름의 시간은 덩어리째 흘러가 뒤엉킨다. 겨울의 시간은 얼어붙어 정지된 듯 보인다. 그러나 가을의 시간은 날카로운 바늘이다. 매일 피부를 찌르고 흔적을 남기며 지나간다. 문신의 바늘처럼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새기고, 침술의 바늘처럼 혈관 깊숙이 파고든다. 때로는 상처의 바늘처럼 고통과 기억을 동시에 남긴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듯, 바늘 자국은 모여 한 사람의 생을 이룬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찔려 각인된다.
공기의 냄새는 복잡하다. 낙엽의 단내, 볕에 덥힌 흙의 숨결, 갓 빨아 널어 햇살에 말라가는 옷감의 잔향. 이 냄새들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겹겹이 포개진다. 코끝에 스며드는 순간, 맥박이 느려지고, 호흡은 깊어진다. 생각의 속도마저 변한다. 냄새는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리듬을 전복한다. 인간은 자기 리듬의 주인이라 믿지만, 계절은 언제나 그 리듬을 다시 조율한다.
가을의 햇살은 존재를 유출시킨다. 자기 보존의 경계가 무너지고, 내부는 바깥으로 흘러나온다. 벤치에 앉은 얼굴들을 보라. 햇살에 반사된 미소는 빛의 파편처럼 흩날리고, 손끝의 초조한 떨림은 불안을 드러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공기 속에 흔적으로 남고, 노인의 기침은 낙엽처럼 묵직하게 떨어진다. 모든 몸은 작은 틈을 통해 내부를 바깥으로 새어 보낸다. 가을은 그 틈을 넓힌다.
바람은 잊었던 기억을 불러낸다. 냄새 하나, 빛의 각도 하나, 낙엽이 땅에 부딪히는 방식 하나가 오래된 장면을 돌연 소환한다. 기억은 낙엽과 닮았다. 가지에서 떨어진 순간 뿌리를 잃고 떠돌다가, 바람에 실려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현재와 충돌하며 다시 쓰인다. 가을은 그 충돌을 가장 예리하게 드러낸다. 햇살이 혈관 속으로 번져 과거를 흔들어 깨우는 순간, 내부는 현재와 과거의 경계에서 흔들린다.
밤은 낮보다 깊다. 낮 동안 몸 밖으로 흘러나온 빛의 잔여는 어둠 속에서도 잔존한다. 전등 불빛 아래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피로로, 혹은 부드러운 고통의 그림자로 남는다. 잠을 청할 때조차 빛은 피부에 얇게 걸려 있다. 그것은 하루의 찌꺼기가 아니라, 존재가 흘려보낸 흔적이다.
가을에 찔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자기 것만이 아님을 인정하는 일이다. 내부의 문이 열리고, 감각과 기억이 흘러나와 세계 속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되돌릴 수도, 소유할 수도 없다. 가을은 그렇게 존재를 유출시키며, 살아 있음을 가장 예리하게 증명한다.
사물도 더 선명해진다. 돌계단의 틈새, 벽돌의 거친 결, 전선 위 까마귀의 검은 실루엣까지. 선명함은 찔림이다. 흐릿할 땐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이, 선명해지는 순간 외면할 수 없다. 가을은 사물을 낯설게 하고, 동시에 직면하게 한다. 선명함은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이야말로 진실의 증거다.
가을의 햇살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삶은 죽음과 닮는다. 빛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흘러나와 흩어지는 순간, 존재는 소멸과 확장을 동시에 겪는다. 낙엽이 썩어 흙이 되고, 빛이 사라져 어둠이 되듯이, 흘러나오는 것은 끝남이자 시작이다. 가을은 매년 이 사실을 가르친다. 찔림은 상처이면서 언어이고, 소멸이면서 탄생이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언제나 내부의 가장 깊은 것을 흘려보내는 사건이다. 사랑과 가을은 모두 상처로 증명된다.
잊지 못하게.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