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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자유보다.

벽이 있던 자리에 창문이 생겼다.

by 적적


그는 여전히 벽의 색을 기억하고 있었다. 회색과 흰색 사이, 그 어디쯤의 무채색. 페인트가 벗겨진 자국마다 시간의 층이 보였다. 그 벽 앞에서 그는 하루를 시작했고, 하루를 마쳤다. 벽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는 벽의 표정을 읽는 습관을 들였다. 벽이 숨을 쉬는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벽을 바라보며 그는 인간의 얼굴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를 배웠다.


장기 외출의 마지막 날, 그는 새벽에 깨어났다. 새벽은 늘 그렇듯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차가운 금속의 냄새가 났다.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고, 그는 오랜만에 자신이 시간을 앞질렀다는 감각을 느꼈다. 바깥공기를 들이마시자 코끝이 시렸다. 그 감각이 낯설었다. 코를 스치는 공기 속에는 먼지, 비, 휘발유, 그리고 자유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자유는 생각보다 묘한 냄새였다. 무겁고, 불안하고, 오래된 창고에서 꺼낸 천처럼 약간의 곰팡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모범수’였다. 모범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그를 무겁게 만들었다. 모범은 타인의 시선에서만 존재하는 단어였다. 그는 그 시선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왔다. 감시의 눈빛 속에서 순종은 살아남는 유일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안전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모범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어떤 날은 자신이 사람인지, 제도 속의 그림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외출 기간 동안 그는 여러 도시를 지나쳤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은 어딘가로 향하는 듯했지만, 목적지에 닿은 사람의 얼굴은 없었다. 그는 그들의 걸음에서 수감 중 느꼈던 시간의 흐름과 비슷한 리듬을 읽었다. 사람들은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자유란 어쩌면 감옥 안 보다 더 복잡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선택이 많다는 것은 길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니까.



그는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쓴맛이 혀끝에서 오래 머물렀다. 감옥 안에서는 설탕이 귀했고, 단맛은 희소한 기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맛이 넘쳐났다. 거리의 간판, 빵집의 유리 진열장, 사람들의 옷차림, 모두 과잉된 색이었다.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있었다. 그는 그 풍요가 불편했다. 결핍에 길들여진 사람은 충만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그는 커피의 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진짜 모범이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닐까.


그는 거리를 걷다가 신발 끈을 묶기 위해 멈췄다. 발밑의 아스팔트에는 낙엽이 눌려 있었다. 낙엽의 색은 검고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문득, 그 낙엽이 감옥의 오래된 신문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버려진 기록이었다. 누군가의 시간과 언어가 이미 지나간 자취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낙엽 위를 밟지 않으려 애썼다. 그것은 사라진 시간에 대한 일종의 예의였다.



장기 외출이 끝나는 날, 그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람들은 그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이제 곧 나갈 텐데, 왜 다시 돌아가냐?’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질문의 온도를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불쌍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의 불행이 그들의 안도감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 시선을 거부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쳤다. 자유를 가진 사람들의 동정은 종종 감옥보다 더 좁았다.



감옥의 문 앞에 섰을 때, 그는 묘한 안정을 느꼈다. 차가운 철문은 그에게 익숙한 리듬으로 열렸다. 그 소리는 오래된 약속처럼 들렸다. 안쪽의 공기는 무겁고 느렸지만, 그 안에는 예측 가능한 질서가 있었다. 그는 그 질서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 질서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았다. 감옥은 인간을 부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조립하도록 만든다.



그는 복도를 걸었다. 바닥의 반짝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감시자의 발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기침. 모든 소리가 정확한 간격으로 존재했다. 그것이 이곳의 시간이었다. 그는 느꼈다. 바깥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지만, 이 안의 시간은 쌓이고 있었다. 시간의 방향이 다르다는 사실이 그를 잠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 익숙한 감옥을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는 관계라는 감옥을, 누군가는 신념이라는 감옥을, 또 누군가는 자유라는 감옥을 택한다. 감옥의 모양은 다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인간은 벽을 두르고 그 안에서 안정을 느낀다. 벽이 사라지면 공포가 찾아온다. 자유는 결국 벽이 없는 감옥일 뿐이다.



그는 침대 위에 앉아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 손바닥 위에는 미세한 흉터가 있었다. 그것은 외출 중에 깨진 유리잔을 잡다가 생긴 자국이었다. 그는 그 상처를 오래 들여다봤다. 상처는 단지 살의 파손이 아니라, 현실의 침입이었다. 그 흉터가 그를 현실에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그는 그 흉터를 통해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천장의 균열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모범이라는 말은 타인의 질서를 지키는 대가로 얻는 평화였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는 평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돌처럼 움직이지 않는 평화였다. 인간은 살아있는 평화를 원하지만, 세상은 돌 같은 평화를 요구한다. 그는 그 두 평화의 차이를 감옥 안에서, 그리고 외출 중에 동시에 경험했다.



새벽이 다시 찾아왔다. 빛은 벽을 타고 천천히 번졌다. 그는 그 빛을 보며 미세한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자유의 빛이 아니라 존재의 빛이었다. 자유는 언제나 타인의 언어 속에서 정의되지만, 존재는 오직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그는 그 차이를 이제야 이해했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지만, 존재는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모범수로 불리는 것에 더 이상 불만이 없었다. 모범이라는 말은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이 제도가 그에게 부여한 역할이었다. 인간은 역할과 존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는 그 흔들림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흔들림 속에만 진짜 자아의 그림자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창문을 향해 걸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바깥의 빛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그는 그 빛을 손끝으로 잡으려 했다. 잡히지 않았지만, 그 시도만으로 충분했다. 세상은 잡히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그것을 잡으려는 몸짓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장기 외출이 끝났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다시 철회된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했다는 뜻이었다. 이제 그것을 안다.



감옥은 밖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늘 내부에 있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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