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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미

식어가는 시간의 입에서

by 적적

하늘은 깨끗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비어 있는 푸른색의 면은, 마치 누구의 기억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오래된 풍경처럼 보였다. 새벽에 잠시 내렸던 비가 도시의 표면을 한 번 닦고 지나간 듯, 유리창과 가로수 잎 사이에는 반짝이는 물기들이 점점이 남아있었다. 그 빛은 아직 하루의 무게를 지니지 않은 채, 가벼운 명절의 공기를 따라 흘렀다.


커피를 내리기 전, 창문을 반쯤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은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의 흙냄새, 축축한 나무의 숨, 멀리서 피워진 제사 음식의 기름 냄새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냄새들은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흩어졌고, 그 흩어짐 속에서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단 한순간 멈춰 있는 듯한 정적. 그 정적 속에 커피의 첫 방울이 떨어졌다.



드리퍼를 통과한 뜨거운 물이 원두 위를 천천히 스며들며 검은색의 액체를 만들었다. 향은 곧장 공기를 채웠다. 신맛이 강한 커피의 향은 어떤 회상과 닮아 있었다. 지나간 계절의 한 장면처럼, 마음 한쪽이 미묘하게 떨렸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의 침묵은 하나의 의식 같았다. 아무 말도, 어떤 소리도 필요하지 않았다. 물이 떨어지는 리듬과 증기가 흩어지는 속도, 그것이 충분한 언어였다.



탁자 위에 놓인 흰색 머그컵은 미세한 균열을 품고 있었다. 유약이 갈라진 틈새가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빛의 방향에 따라 달리 반짝였다. 그 안에 담긴 커피는 검게 빛났으나, 가장자리엔 미세한 황금빛의 윤이 감돌았다. 한 모금 머금자, 산미가 혀끝을 찌르듯 스쳤다. 그 순간, 미약한 전류가 몸속을 지나가는 듯했다. 커피의 산미는 일종의 감정과도 같았다. 단정하게 다듬어진 슬픔, 혹은 너무 오래된 기쁨 같은 것. 감정이 오래 머물러 한쪽이 닳고 다른 한쪽이 빛을 잃은 자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



밖에서는 명절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트럭의 시동음,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물건을 나르는 소리,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의 단편적인 멜로디. 그러나 그 모든 소리들은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있었다. 도시의 소음이 아니라, 마치 폐막한 축제의 잔향 같았다. 명절의 도시는 언제나 이상한 균형 위에 서 있다. 떠난 사람들과 남은 사람들, 웃음이 끝난 자리와 고요가 시작되는 틈새. 그 틈새가 오늘의 공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햇빛이 점점 강해지며 벽을 타고 올라왔다. 빛의 각도는 완벽하게 일정하지 않았지만, 그 불규칙함이 오히려 시간의 정확함을 증명하는 듯했다. 벽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그림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계의 초침이었다. 바닥 위로 미끄러지는 빛의 결은 부드럽고 얇았으며, 그 위에 놓인 책의 표지는 조금 더 따뜻한 색으로 변해갔다. 명절의 아침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히 흐르며 모든 사물을 미세하게 바꾼다.



커피잔을 들고 창가로 다가갔다. 푸른 하늘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그 색은 단순한 파랑이 아니었다. 안쪽엔 유리 조각 같은 맑음이 있었고, 바깥쪽으론 바다가 멀리서 반사된 듯한 청록이 깔려 있었다. 그 경계에서 빛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사람의 감정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쁨과 쓸쓸함이 서로의 윤곽을 흐리게 만든다. 어느 하나로 단정되지 않는 상태, 그것이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감정의 형태다.



명절의 한가운데에는 늘 이상한 공기가 흐른다. 모여야 할 사람들이 모여 있고, 웃음과 음식이 있지만, 그 안에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공허가 함께 존재한다. 그것은 부재의 기척이다. 이미 떠난 사람들, 혹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의 기척. 그 기척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빛의 방향이나 공기의 냄새 같은 형태로 감지된다. 추석의 아침에 느껴지는 쓸쓸함은 바로 그 부재의 형상에서 비롯된다.


탁자 위의 커피는 조금씩 식어갔다. 온도가 내려가며 향의 결이 바뀌었다. 처음의 산미는 점점 부드러워지고, 대신 약간의 쓴맛이 떠올랐다. 맛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과 같다. 처음엔 날카롭고 명확하지만, 이내 둥글어지고, 마지막에는 거의 무색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감정도 그와 비슷한 속도를 가진다. 한때 날카롭게 빛났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온도를 잃고, 결국엔 희미한 그림자만 남긴다.



창문 너머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하지만 그 푸름이 조금씩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햇빛이 강해지면 하늘은 오히려 색을 잃는다. 빛이 모든 것을 덮을 때, 색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다. 너무 밝으면, 너무 충만하면, 본래의 색을 잃는다. 적당한 어둠과 공허가 있어야 색은 선명해진다. 그래서 쓸쓸함은 종종 어떤 진실의 형태로 작용한다.



창가의 화분이 시선을 붙잡았다. 잎사귀의 끝이 말라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 식물은 무성했지만, 계절이 바뀌자 잎의 질감이 변했다. 물을 주어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빛의 방향, 공기의 밀도, 계절의 리듬이 어긋나면 생명은 느리게 퇴색한다. 그러나 그 퇴색의 과정은 아름답다. 색이 옅어지고 형태가 흐려지는 동안, 존재는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다.



시간이 흐르자 집 안의 그림자가 달라졌다. 처음엔 벽의 아래쪽에 머물던 빛이 이내 위로 옮겨갔다. 그림자는 천천히 길어지고, 사물의 윤곽은 더 뚜렷해졌다. 정지된 것처럼 보이던 사물들이 사실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빛의 각도가 바꾸는 존재의 방향이었다. 사람도 그런 식으로 변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은 이미 깊은 곳에서 구조를 바꾸고 있다.



커피를 다시 한 모금 삼켰다. 거의 식은 커피는 처음과 전혀 다른 맛이었다. 하지만 그 다른 맛 속에 묘한 평온이 있었다. 뜨거울 때는 감각이 분주하지만, 식으면 오히려 생각이 선명해진다. 인간의 감정도 그렇게 식는 법을 배운다. 처음엔 타오르고, 나중엔 식는다. 그러나 식은 자리에는 종종 더 명확한 빛이 남는다. 그것은 잊음이 아니라, 이해에 가까운 온도다.



명절의 오후로 넘어가기 전, 하늘은 잠시 더 짙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함 속에서 새 한 마리가 천천히 선을 그었다. 그 비행의 궤적은 잠시 남아있다가,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사라진 자리에는 미세한 잔광이 남았다. 그것은 존재의 증거였다. 사라진 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모든 부재에는 흔적이 있고, 모든 끝에는 어떤 여운이 남는다.



푸른 하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커피잔은 비어 있었고, 향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창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 안에는 커피의 산미, 바람의 냄새, 그리고 계절이 남기고 간 가벼운 슬픔이 섞여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만들어낸 온도는 정확히 지금 이 계절의 온도였다.



추석 연휴의 수요일 아침은 그렇게 흘러갔다. 특별한 일도, 의미를 찾아야 할 사건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무의미 속에서 오히려 시간의 질감이 가장 분명하게 느껴졌다. 산미 높은 커피의 여운처럼, 쓸쓸하고도 투명한 그 아침의 공기가 여전히 입 안에 남아있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그 푸름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다만 존재하는 그대로, 한순간의 완전함으로 머물렀다. 그리고 그 완전함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멈춰 있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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