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은 의지보다 흔적에 가깝다.
그 말은 생각을 고르기도 전에 먼저 입 밖으로 나왔다. 혀가 단어를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공기 속으로 밀려난 문장처럼. 말이라는 건 가끔 그렇게 튀어나온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보다 빠른 속도로. 모서리는 날카로운 것이고, 동그랗다는 말은 보통 그걸 부정한다. 선명함과 무뎌짐 사이에 선 긍정과 부정의 구분처럼. 그런데 현실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오래 쓰다 보니 끝이 둥글어진 연필, 지우개 가루가 묻어 늘 희뿌연 그 끝. 손이 얼마나 많이 닿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지하철 손잡이, 매끈해야 할 표면이 미묘하게 물결처럼 닳아 있는 그 플라스틱. 폐교 운동장 한쪽에서 비와 바람을 다 맞고도 남아 있는 철봉의 가장자리, 녹이 슬어 색이 변했지만 손바닥에 닿으면 이상하게 부드러운 그 부분. 누가 깎아낸 것도 아닌데 그렇게 변해 있다. 애초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남겨진 결과처럼.
마음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그런 모서리가 있을 수 있겠다고. 이상하게 들리지만, 막상 떠올리면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다. 날카롭지 않다는 건 무디다는 뜻이 아니라, 닳아왔다는 뜻일 수도 있다. 무수한 마찰과 반복 속에서 조금씩 깎여온 각. 오래 쓰였다는 흔적 같은 것.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만져보면 알 수 있는 상태.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오후 햇빛에 길게 늘어진 미끄럼틀의 그림자, 표면에 얇게 긁힌 자국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남아 있다. 미끄럼틀 끝부분은 항상 조금 둥글다. 내려오는 아이들의 몸무게와 속도를 매번 받아내느라 그렇게 된 모양이다. 처음 설치됐을 때는 번쩍였을 금속에는 잔흠집이 가득하다. 아이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손에 닿는 차가움이나 내려올 때의 속도만 기억한다. 미끄러지는 순간의 짧은 비명과 착지의 둔탁함. 마음의 모서리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매번 닿는 자리. 그 자리에 닳음이 쌓인다.
카페에서 의자를 고를 때 오래된 의자에 먼저 눈이 가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나뭇결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고, 네 다리가 미묘하게 서로 다른 방향을 본다. 완벽한 직각은 아니지만 바닥에 놓였을 때 흔들리지 않는다. 모서리가 조금 깨졌는데도 이상하게 안정적이다. 앉자마자 몸이 알아서 힘을 푼다. 반듯한 의자는 오히려 어디 하나 걸리는 느낌을 준다.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의식하게 만든다. 지나치게 각 잡힌 마음은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조금 망가진 마음이 현실에는 더 잘 놓인다. 체중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이다. 인사를 하고 난 뒤 잠깐 생기는 그 공백. 컵을 내려놓는 소리나,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간. 그 안에 각자의 모서리가 숨어 있다. 어떤 침묵은 숨이 막히고, 어떤 침묵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
시선이 바닥에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은 침묵. 예쁜 모서리를 가진 마음은 침묵을 성급하게 채우지 않는다.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건 성격보다는 시간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오래 함께 견뎌본 시간의 총량.
비 오는 날 우산을 접다 보면 손끝에 닿는 천의 주름이 부드럽다. 물기가 남아 조금 무거워진 천, 손바닥에 밀착되는 감각. 새 우산은 각이 살아 있어 접을 때마다 어딘가 걸리지만, 여러 번 펴고 접은 우산은 손에 잘 맞는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면 뒤집히는지도 알고, 물이 고이는 자리도 안다. 마음도 그런 식으로 배워간다. 설명서가 아니라 몸으로. 실패와 후회가 접힌 자리로 남아 있다.
밤의 도시는 낮보다 부드럽다. 네온사인과 가로등 아래에서 건물의 모서리는 덜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림자가 각을 먹어버린다. 모든 것이 또렷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편해진다. 마음도 모든 면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드러나는 부분과 숨겨지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섞일 때 균형이 잡힌다. 완전히 밝을 필요도, 완전히 어두울 필요도 없이.
편의점 계산대 옆에 놓인 동전통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크기와 색이 다른 동전들이 뒤섞여 서로 부딪히며 낮은 소리를 낸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굴러왔을 동전들인데 모서리는 비슷하다. 무엇을 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는지가 중요하다. 손의 온도, 주머니의 어둠, 계산대 위의 짧은 대기 시간. 마음의 모서리도 아마 그렇게 닮아간다.
관계의 초반에는 마음이 보통 각져 있다.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서 있어서 작은 말에도 쉽게 찔린다. 웃음 하나에도 의미를 붙이고, 침묵 하나에도 결론을 내린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속도를 알게 된다. 여기까지는 괜찮고, 여기서부터는 멈춰야 한다는 걸. 그 과정에서 모서리는 조금씩 둥글어진다. 상대를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덜 아프기 위해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변화.
낡은 책을 넘길 때 손끝에 남는 감각은 종이보다 시간에 가깝다. 가장자리가 얇아져 종이가 손에 달라붙듯 넘어간다. 페이지 사이에는 공기가 아니라 기억이 낀 것 같다. 새 책은 반듯하지만 잘 열리지 않는다. 중심을 억지로 눌러야 한다. 마음도 그와 비슷하다. 많이 쓰인 마음은 쉽게 펼쳐지고, 닫힌 마음은 단단하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았을 뿐이다.
보도블록의 둥근 모서리를 보면 넘어질 걱정이 덜하다. 비에 젖어도 발이 걸리지 않게 닳아온 자리다.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사라진 각. 마음의 모서리가 예쁘다는 말에는 그런 뜻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혹은 다치지 않기 위해 조금씩 깎여온 흔적. 미관이 아니라 기능에 가까운 아름다움.
마음의 모서리는 성취가 아니라 생존의 기록이다. 잘 살아냈다는 증명이라기보다, 아직 여기 있다는 표시.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들. 부딪히다 보니 닳아버린 것들. 그 결과가 동그랗고 예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날카로웠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양이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또 닳을 것이다. 피할 수 없이, 그러나 조금 더 능숙하게.
여전히 동그랗게,
각자의 방식으로,
예쁘고, 조금은 사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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