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문장들은 끝났고, 어떤 문장은 시작되지 않았다
편집장의 전화는 오후의 정적을 깨뜨리려다 말고, 방 안 어디쯤에서 묵직하게 울렸다. 오래 써서 손때인지 먼지인지 모를 것들이 얇게 붙어 있는 스마트폰 액정에 ‘발신자’편집장’이라는 글자가 떴다. 시인은 잠깐 숨을 고르고 전화를 받았다. 신인상 심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편집장의 말투는 고가구처럼 손때가 묻어 있었고 그의 대답은 서랍처럼 조금 엇갈리게 열렸다 “예.” 감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실릴 틈도 없이 단순한 대답만 흘러나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편집장이 작은 안도의 소리를 냈다. 창밖에서는 세탁소 비닐처럼 흐릿한 구름이 천천히 길을 바꿨다.
시인은 책상 아래 넣어둔 투명 플라스틱 상자를 꺼냈다. 작은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눌려 지낸 시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 형이 가져가버린 색연필 중 유일하게 남았던 짙은 갈색 한 자루. 대학 시절 인쇄소에서 샘플로 준 스프링제본 노트. 첫 시가 발표되던 날, 의미도 모르고 샀다가 잉크가 말라버린 싸구려 볼펜.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오래된 종이와 플라스틱이 섞인, 설명하기 애매한 냄새가 그의 코끝을 건드렸다. 그 냄새는 기억을 오래 붙잡아두지 못했다. 시인은 잠시 상자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시 닫았다.
서울역 앞에서 택시에 올랐다. 에어컨 필터에서, 지나온 계절의 뜨거운 바람을 뿜어내며 여러 쌓인 먼지 냄새가 흘러나왔다. 택시라는 곳은 늘 계절에서 반 발쯤 어긋난 온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창문 바깥을 바라봤다. 역 주변으로 우산들이 흩어져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과하게 대비하듯 우산을 한 손에 들고, 천천히, 혹은 너무 빠르게 걷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팝송이 흐르다가 갑작스럽게 광고 멘트로 끊겼다. 시인은 그 순간마다 과거의 시간이 잘게 잘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스물세 살 시절은 반지하에서 시작되었다. 눅눅한 바닥, 벽에 번진 곰팡이, 색이 바랜 전등불. 이상하게 그 모든 것이 시를 쓰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그는 그 시절을 두고 ‘가난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언제나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다”고만 했다.
사실은 단순했다. 가난은 꿈의 속도를 늦추고, 문장을 짧게 만들고, 서로 비슷한 날들을 반복하게 만드는 구조였다. 그는 그 구조 안에서 문장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대부분은 쌓였고, 버려졌고, 눅눅해져 모서리가 굳거나 각설탕처럼 바스러졌다.
문예지 사무실은 삼청동 골목 끝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마루로 이어진 문을 밀자 쿰쿰한 흙냄새가 느리게 밀려 나왔다. 편집장은 벽에 등을 기대 오래 앉아 있었다는 흔적을 남긴 채 그를 맞았다. 방 안에는 박스들이 가득했고, 종이는 오후 공기를 먹으며 특유의 냄새를 더 짙게 만들고 있었다. 시인은 한 박스를 열었다. 닳아 있는 모서리들이 손끝에 거칠게 닿았다. 오래 잡고 있으면 피부가 살짝 벗겨질 것처럼.
첫 번째 원고의 첫 문장은 아무 냄새도, 온기도 없었다. 익숙한 문장, 익숙한 감정, 과하게 솔직한 설명. 시인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문장이 넘어가는 속도와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서로 맞지 않았다. 그는 그 어긋남을 오래전 신춘문예에 떨어졌던 겨울에 배웠다. 눈이 녹아 반지하 바닥을 적시고, 난방기를 틀어도 방이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던 날들. 떨어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이상하게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문장이 충분히 ‘추워져 있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쉽게 불타오를 수도, 오래 남을 수도 없었다는 것.
두 번째 원고를 읽을 때쯤, 스물아홉 무렵 처음 동인지를 냈던 순간이 떠올랐다. 출판사는 작은 축하 자리를 마련했지만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들렸다.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문장들이 더 무겁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 시집 이후로 한동안 글이 나오지 않았다. 그 침묵이 언어에 대한 복수인지, 아니면 어설픈 화해인지 그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마당에 나가 담배를 피우는 편집장을 바라보며 그는 잠시 바람을 느꼈다. 마당 흙이 비에 젖어 신발 밑창 아래에서 약하게 꺼지는 소리를 냈다. 젊은 시절 함께 시를 쓰던 동료가 생각났다. 자신의 문장을 누구보다 먼저 의심하던 사람이었다. 그 동료는 서른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 그는 모든 시간이 조금씩 무너지는 듯한 감각을 처음 느꼈다. 문장이라는 것이 결국 살아 있음을 남기려는 아주 얇은 시도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원고 위로 노을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선명하지 않은 색,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탁한 빛이었다. 세 번째 박스를 열자 종이 사이로 작가의 습기가 묻어 있었다. 이번 원고는 문장이 지나치게 정확했다. 정확해서 오히려 여백이 없었다. 시인은 종이에 손끝을 잠깐 올렸다. 좋은 글은 종이 온도가 아주 조금 다르다는 것을,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언어를 조심스럽게 밀어넣는 이들의 체온이 잠시 머물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도 갑자기 떠올랐다. 담임에게 처음으로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을 들었던 때. 칭찬이 아니었다. 문제집 글쓰기란에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적었다는 이유로 복도에 세워졌다. 그날 창문 밖으로 세찬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의 소리는 아직도 통증처럼 남아 있었다. 상상력은 그때부터 금지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금지가 그를 오래 밀었다.
편집장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라면 봉지를 뜯고 끓이는 편집장의 등에 주방등이 번져 보였다. 냄비에서 김이 오르자 사무실의 냄새가 조금 바뀌었다. 인스턴트 수프 냄새는 현실적이고 단단했다. 그 냄새가 나는 순간 사람들은 대체로 말수가 줄었다. 시인도 그랬다. 라면을 먹으며 그는 지난 석 달 동안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했다. 쓰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체력이 떨어진 것처럼 언어가 따라오지 않는 상태였다.
심사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밤 공기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원고 상자를 정리하는 편집장은 “언제든 또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한옥 문 밖으로 나오자 가로등이 어색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를 스치는 고양이 한 마리는 소리 없이 어둠에 스며들었다. 그 무음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그는 문장이라는 것이 결국 저런 종류의 움직임을 흉내 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내려가는 길. 창문에 비친 도시의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렸다. 시인은 과거의 장면들을 생각했다. 반지하 방의 냄새, 버려진 원고 더미, 젊은 동료의 빈자리, 첫 시집의 무게, 그리고 지금 손에 들린 미완성 원고들. 모든 시간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듯 흩어져 있었지만, 문장에 손을 얹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한 줄이 되었다.
그는 가방을 살짝 눌러보았다. 종이의 온도가 아직 미지근했다. 누군가의 삶이 아주 작은 조각으로 배어 있는 온도. 그 온도를 느끼며 그는 생각했다.
모든 과거는 결국 ‘읽히기를 기다리는 원고’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어떤 문장들은 이미 끝났고, 어떤 문장들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 중간쯤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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