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명암이 남긴 불완전한 저녁
그것은 지우개로 정성껏 지운 그림의 윤곽만남은 인물화 같았다.
선은 더 흐려지고 명암은 느린 저녁을 맞이하고 있던.
초겨울의 골목에는 햇빛이 아니라 먼지 같은 빛이 걸려 있었다. 하루가 기울어가는 시각, 느린 명암이 흘러들어 벽과 창, 오래된 간판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무너뜨렸다. 그 고요한 침식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는 유리창에 스치기만 해도 금세 흐려졌고, 마치 조금 전까지 존재했던 흔적들마저 자신의 경계를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초겨울의 공기는 차갑지 않았지만, 사물의 표면에만 미묘한 얼음꽃의 결을 흘리고 있었다. 손끝을 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공기였다.
그 저녁의 빛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은 지우개 자국을 닮았다. 연필로 그린 인물의 볼륨을 지우려다 남은 미세한 흔적들, 그런 잔상들이 초겨울 하늘 아래에서 다시 명암을 갖고 흔들리고 있었다. 어둠이 들기 전의 빛은 오히려 더 흐리고, 더 느리고, 더 오래 사람과 사물을 붙잡았다. 초겨울 특유의 얇고 미세한 냉기가 공기 사이를 파고들며 구불거리듯 움직였고, 그 안에서 모든 사물은 자신의 색을 잠시 잃었다. 표면은 희미해지고, 대신 가장자리만 명확해졌다. 그 가장자리조차 곧 흐려질 것처럼.
초겨울은 계절의 환청 같은 시기였다. 낮과 밤이 서둘러 뒤섞이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드는 시각이면 늘 희뿌연 숨결만 거리에 떠돌았다. 빛은 도망가듯 사라지면서도,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사물의 진짜 윤곽을 드러내는 법이었다. 명암은 그때 비로소 느리고 섬세해졌고, 모든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얇아졌다. 이 계절의 상점 유리창에는 해묵은 먼지가 희미하게 앉아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의 옷깃이 스치면 그 자리에 잠깐 따뜻한 김이 맺혔다가 바로 사라졌다. 작은 변화들이 거대한 움직임처럼 느껴지는 계절이었다.
그날의 저녁도 그랬다. 흐린 명암은 도시의 모서리마다 얇게 침투해, 평소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벽돌의 금 간 틈이나 오래된 가게의 문손잡이까지도 하나의 풍경처럼 만들었다. 초겨울의 풍경은 소리를 줄였고, 대신 사물들끼리 가만히 부딪히는 느낌 또는 잠시 머무는 입김 같은 정적을 강조했다. 그 정적 안에서 오래된 청소차가 천천히 지나가며 차가운 공기를 휘저었고, 그 바람의 결은 마치 누군가 실수로 문장 중간을 지웠다가 덜 지운 자국처럼 삐걱거렸다. 초겨울은 모든 것을 잠시 멈추게 만드는 기이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저녁의 흐린 명암이 드리운 풍경은 초상화 속 인물이 제자리에서 천천히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오래된 지우개로 조금씩 밀려나간 선들이 다시 복귀하려는 것처럼, 빛과 어둠은 반복적으로 서로를 오염시키며 새로운 표면을 만들었다. 거리의 난간 위에는 얇고 투명한 물기 한 줄이 남아 있었고, 그 위로 초겨울 바람이 지나가자 실핏줄처럼 갈라진 흔적이 나타났다. 그 흔적들은 빛을 흩어지게 만들고, 또 다른 명암을 만들어냈다.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 변화가 전체를 고요하게 흔드는 느낌이었다.
초겨울의 저녁은 사람의 감정까지도 사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눈빛, 손끝의 떨림, 발걸음의 주저함 같은 것들이 하나의 풍경으로 변해 어딘가에 고정된 채 떠다녔다. 빛의 농도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표정이 흐릿해지는 순간조차 명암은 그 흐림을 감싸며 끝까지 남아 있었다. 거리의 온도는 낮고, 그 낮음이 오히려 미세한 감정들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낙엽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 무표정함 속에 계절의 조용한 불안을 담고 있었다. 사람보다 사물이 더 솔직한 계절이었다.
그 저녁의 흐린 명암은 사라짐의 과정을 천천히 보여주고 있었다. 초겨울의 해는 너무 빨리 저물어 모든 사물의 형태를 궤도 밖으로 밀어냈고, 남아 있는 것들은 결국 잔상뿐이었다. 하지만 잔상은 사라짐과는 다른 방식으로 남았다. 조금 전에 분명히 존재했던 물체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기이한 길이를 늘이며 자신을 오래 붙들어두었다. 초겨울의 저녁은 모든 사라짐을 부드럽게 처리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서 되려 선명한 증거를 남긴다. 눈앞에서 희미해지는 모든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을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듯했다.
초겨울의 빛은 사람들의 대화를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길가의 카페 유리창 안쪽에 걸린 작은 전구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흐린 노란빛을 내며 그저 주변을 어색하게 밝히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의 표면에는 차가운 증기가 올랐다 사라졌고, 그 사라짐의 시간들이 모여 저녁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초겨울의 저녁은 대화의 여백을 길게 만들고, 불필요한 말들 대신 미세한 숨결과 눈의 움직임이 풍경의 일부가 되게 했다. 모든 것이 조금씩 늦어지고, 그 늦어짐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그 풍경 전체가 마치 벽에 걸린 낡은 스케치북 한 장 같았다. 지우개의 가루가 사라지지 않고 종이 끝자락에 희게 달라붙어 있는 모습, 다 지우지 못한 선들이 명암보다 더 명확하게 남아 있는 모습. 초겨울의 저녁은 그런 불완전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생생하고, 흐릿하게 지워졌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그 모든 잔상들이 겹겹이 쌓여 저녁의 표면을 만들고, 그 표면을 따라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도시가 끝없이 변조되는 명암 속에서 멈칫거리며 다시 흐르는 동안, 저녁은 이미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생명처럼 보였다. 섣부른 추위와 불완전한 어둠이 서로 부딪혀 만들어낸 이 흐린 명암은, 결국 사라질 것들의 마지막 모습을 고요하게 스캔하고 있었다. 사물의 경계를 지우고, 감정의 결을 드러내며, 시간이 잠시 느려지는 순간. 초겨울의 저녁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주변을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흐린 명암 때문에, 사라져 가는 것들이 오히려 더 길게 머무는 법이다. 초겨울의 공기는 원래 그런 기억을 품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무엇이든 한 번에 지워지지 않고, 무엇이든 희미하게 남아 스스로의 윤곽을 증명하는 계절. 흐린 명암이 남긴 저녁은 그렇게 오래도록 도시에 깃들어.
사라질 모든 것의 선을 환하게 밝혀두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