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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루가 쓰여있다

지워지고 다시 적히는 풍경에 대하여.

by 적적


새벽의 방 안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창문 틈에서 들어온 공기는 밤의 잔해를 붙들고 있다. 책상 위의 컵은 어제의 차를 반쯤 담은 채 식어 있다. 그 옆에는 찢어진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다. 잉크가 번진 글자들. 숫자들. 누군가 흘리고 간 시간의 파편 같은 것들. 이 정적은 제목 없는 챕터처럼 머물러 있다. 누군가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방의 스테인리스 싱크대는 손자국을 담고 있다. 식칼은 빛의 방향에 따라 엷은 잔광을 반사한다. 빵 한 조각이 도마 위에 눕혀져 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아침의 정물. 누군가는 이 순간을 1장이라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런 이름 자체를 부끄러워한다. 이름이 붙는 순간, 하루는 지나치게 분명한 구조를 갖게 된다. 구조는 예측을 부른다. 예측은 종종 지루함이 된다. 그래도 도마 위의 빵은 묵묵히 아침의 역할을 맡는다.



거리로 나서는 순간, 공기는 미세하게 싸늘하다. 횡단보도 신호등의 초록불은 눈 위에 박히는 점 하나처럼 단단하다. 신발 바닥은 지난밤 어둠에 젖은 아스팔트의 반질거림을 밟는다. 머리 위 전깃줄은 긴 문장을 지워낸 뒤 남은 밑줄처럼 팽팽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조용한 문장부호다. 누군가는 걷기만 하는데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목차가 하나씩 추가된다. '출근', '회의', '식사', '다시 걷기', '퇴근'. 누구도 그렇게 적지 않았는데도.


회사 건물의 유리문은 언제나 차갑다. 손바닥을 얹는 순간 피부의 온도가 유리에 흡수된다. 로비의 니스 냄새는 낮 동안의 밀폐된 공기와 합쳐져 묘한 긴장을 만든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은 전날과 오늘의 표정을 삐끗하게 섞어둔다. 층수를 알리는 LED 숫자는 숨을 고르는 사람들의 심박수를 대신 재는 것 같다. 이곳은 매일 같은 순번을 강요하는 장소다. 시간은 이 건물 안에서만큼은 직선이 된다.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는 지난 회의의 문서를 그대로 띄운다. 커피잔은 이미 테두리에 갈색 윤기를 남겨놓았다. 키보드 사이에는 빵 부스러기와 머리카락이 끼어 있다. 사무실의 사람들은 체온을 일정하게 조절한다. 그 냉기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목차와 회사의 목차 사이에서 묘한 줄다리기를 한다. 업무 목록을 채우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숨을 돌리는 시간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장박동을 늦추는 일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자유를 흉내 내는 움직임을 보인다. 식당 입구의 냄새는 국물과 기름이 섞여 있다. 쟁반 위 반찬 하나하나가 흐릿한 기호처럼 놓인다. 식탁의 표면에는 오래된 물 얼룩이 겹겹이 남아 있다. 옆 테이블에서는 숟가락이 그릇을 치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린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말을 아낀다. 이 시간은 잠깐의 공백처럼 느껴진다. 오후의 목차가 다시 밀려오기 전.



오후의 실내는 약간의 그림자를 품고 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빛은 책상 위를 조용히 덮는다. 메신저 알림 소리는 작은 금속구슬이 바닥에 굴러가는 듯한 울림을 준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니터 중심에 고정된 채 흔들리지 않는다. 복사기의 열기는 종이에서 나는 미세한 탄내와 섞여 익숙한 냄새를 만든다. 이 시간대의 분위기는 제법 견고하다. 하루의 중심부가 고유의 중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퇴근 무렵, 공기는 다시 가벼워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느껴지는 그 짧은 바람. 로비를 빠져나가는 발걸음은 오전보다 느슨하다. 거리의 가로등은 해가 품었던 빛을 이어받은 듯 켜진다. 지하철 입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둠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통로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어깨에는 하루 종일 들고 다닌 보이지 않는 목록이 매달려 있다.


지하철 내부의 금속 손잡이는 많은 손의 체온을 담고 있다. 광고판의 화면은 계속 갱신된다. 누군가의 시선은 창밖의 터널 벽을 향한다. 검은 벽에는 낙서 하나 없다. 그 공백은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역마다 들리는 안내 방송은 반복되는 멜로디처럼 귓속에 남는다. 퇴근길의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비슷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개인의 목록은 여전히 활동한다. ‘오늘 실패한 일’, ‘아직 말하지 못한 문장’, ‘돌아가면 해야 할 사소한 일’.



집으로 돌아오면 현관 바닥의 먼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구부려 신발을 벗는 동작에는 하루의 잔여가 묻어난다. 침대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는 희미한 먼지 냄새가 공기에 섞여 있다. 침대 시트는 조금 구겨져 있다. 탁자 위에는 집어넣지 않은 영수증이 모여 있다. 하루 동안 밖에서 떠돌던 시선이 비로소 고정되는 자리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다시 자신만의 목차를 정리한다. 혹은 도망친다. 어떤 순간에는 목록을 버리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냉장고 문을 열면 내부의 약한 불빛이 퍼진다. 김이 빠진 탄산수 한 캔이 구석에 비스듬히 놓여 있다. 남은 국거리는 투명 용기 안에서 굳어가고 있다. 늦은 저녁은 종종 냉기 속에 저장된 단서들로 이루어진다. 테이블 위에 수저를 올려놓는 동안, 사람들은 하루를 다시 펼친다. 식사라는 행위는 몸의 리듬을 조절한다. 아무 말 없는 이 시간은 가장 사적인 챕터일 수 있다.



밤이 깊어가면 방 안의 공기는 묵직해진다. 스탠드 조명이 책의 한쪽 면만 비춘다. 책장 위의 먼지는 얇게 쌓여 있다. 스마트폰 화면은 일정한 간격으로 새 소식을 띄운다. 멈추지도 강조하지도 않는 정보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버린다. 이 단순한 행위가 의식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선택은 평범한 하루에서 가장 조용한 저항이다.



불을 끄면 모든 사물은 자신만의 그림자를 거둔다. 침대에 누울 때, 이불의 섬유가 피부에 닿으며 미세한 마찰음을 낸다. 방 안은 한순간에 비어 있는 듯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사람들은 무언가를 떠올린다. 대체로 크지 않은 일이다. 미처 끝내지 못한 문장.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말. 눈앞에 두고 지나친 가게의 빵 냄새.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한 날의 말미를 장식한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닫는다. 하루의 목차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 속에 가장 오래 남은 순간들이 조용히 제목을 차지할 뿐이다.



다음 날이 온다. 알람 소리는 거침없이 울린다. 창문 너머로 새벽빛이 다시 방을 두드린다. 어제와 거의 같은 풍경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또 다른 목차를 품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이를 계획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이를 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끝내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이름 없는 하루는 여전히 생생하게 흘러간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목차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 목록이 결국 사라지는 방식이다. 지워지는 흔적들. 남는 자국들. 밤마다 재정렬되는 장면들. 삶은 거대한 제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순간들이 자기 힘으로 챕터가 된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아니, 어쩌면 이미 있으며, 또 계속 지워지고, 다시 쓰이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거의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루의 가장 깊은 문장은.




늘 묵음 상태로 존재하니까.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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