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잎이 남긴 보이지 않는 구조에 관하여
지난여름, 가로수 잎들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얇은 비늘처럼 일렁였다. 햇빛이 스며드는 결마다 푸른 선이 번지고, 열대어 몇 마리가 도심 공기를 헤엄치는 듯한 환영이 피어났다. 사람들의 발밑에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얕은 수면이 깔린 듯했고, 나무 그림자는 수초처럼 몸을 늘여 도시 바닥을 더듬었다. 잎사귀들이 부딪힐 때마다 잔물결 같은 소리가 잠깐 들렀고, 그 사이사이로 여름빛이 흩어졌다.
여름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잎의 광택은 어느 순간 바래기 시작했고, 색은 미세한 틈을 따라 스며 나갔다. 도심의 열대어들은 단단한 비늘을 잃은 채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침마다 길 위를 떠다니는 먼지는 수면 위 부유물처럼 흔들렸다. 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납작한 녹색 얼룩만 남았다. 발끝에 닿는 순간, 오래된 기억을 건드리는 듯 뻣뻣하게 느껴졌다.
아침 햇살은 계절의 변화를 숨기지 않았다. 낡은 빛은 몸을 웅크린 채 도로 위를 기어갔다. 잎사귀 잔해는 등뼈처럼 가느다란 줄기만 남겼고, 햇빛에 닿으면 종잇장처럼 부서졌다. 한때 물고기의 등빛 같았던 푸른 결은 회색 층 아래 묻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도시 거리는 마른 생선 골격처럼 가벼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바람은 더 이상 비늘을 흔들지 않았다.
사라진 색의 자리는 다른 사물들이 채웠다. 버스정류장의 유리에는 여름이 지나간 자국이 눌어붙어 있었고,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희미한 윤기가 번졌다. 건물 벽면은 햇빛을 흡수하느라 지친 피부처럼 텁텁했고, 매연의 층위는 얇은 진흙처럼 쌓였다. 손끝으로 긁으면 가루가 흩날렸다. 사라진 잎의 결은 어느새 도시의 틈새에 들러붙어 흉터처럼 남았다.
사물들은 매일 조금씩 변형되었다. 가로등 금속 표면은 뜨거운 여름을 지나 무광의 질감으로 바뀌었다. 횡단보도의 흰색은 발바닥과 타이어 자국에 눌려 뼛조각 같은 모양을 띠었다. 신호등 초록불은 조금 더 탁해졌고, 그 속에서 지난 계절의 푸른빛이 작은 점처럼 남았다. 오래 바라보면 공기 중 먼지가 그 점에 들러붙어 색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계절은 이렇게 도시의 사물들을 스치며 조용히 몸을 바꾸었다.
새벽 건물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가장자리는 말라붙은 물의 검은 테두리 같고, 내부는 색이 빠진 사진처럼 무력했다. 그림자를 걷는 사람들은 발끝으로 그 무력함을 밟으며 지나갔다. 사람들의 열기와 땀 냄새가 그림자 표면에 스며들었다. 그림자도 계절을 흡수하고 있었다. 잎사귀가 색을 잃어가는 과정과 닮았다. 어둠 속에서 밝음을 잃어가는 시간에 가까웠다.
도시는 끝없이 탈피하는 동물 같았다. 유리창은 하루에도 수십 번 색을 바꾸며 새로운 결을 만들었다. 구름이 길게 찢어지면 유리 표면에서 하얀 비늘이 깜빡거렸고, 그 빛은 오후 바람에 실려 대로변을 건넜다. 자동차 금속 표면에서 반사된 빛도 깜빡였다. 사라진 잎의 비늘과 도시 금속 비늘이 서로의 결을 대체하는 듯했다. 생명과 무생물이 같은 방식으로 빛을 잃고 흩어내고 있었다.
열대어처럼 보였던 잎은 이제 완전히 흩어졌다. 잔해는 도심 구석구석에서 다른 질감으로 남았다. 하수구 철제 덮개에 눌어붙은 녹색 반점, 벤치 아래 마른 잎 조각, 자동차 바퀴에 눌린 종잇장 같은 파편. 형태를 잃었지만, 계절 내부에서 결을 남기려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 결은 명확한 색도 구조도 없었지만, 발뒤꿈치에 작은 이물감으로 느껴졌다.
가을이 깊어지자 사람들의 시선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향했다. 나무 위 잎보다 바닥 잔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바닥은 매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새벽 이슬이 잎 조각에 스며들면 반투명 조직처럼 보였고, 오후 햇빛 아래서는 바싹 마른 신경다발 같았다. 바람이 불면 흩어질 만큼 가벼웠지만, 흩어질 때마다 아주 작은 자국을 남겼다. 그것은 시간의 기척, 계절 내부에서만 들리는 소리 같았다.
낙엽은 황금빛으로 구워낸 갈치 한토막 같았다. 서툰 젓가락질로 가장자리를 발라내다 보면 얇은 비늘처럼 들뜬 결이 먼저 흩어진다. 바람은 그 결을 건드려 살점을 훔쳐가듯 흔들고, 남겨진 것은 어쩐지 급하게 내려놓은 뼈대 같다. 촘촘히 계절을 지탱하던 줄기는 비에 몇 번 씻겨 나가자 맨살을 드러낸 채 앙상해진다.
하지만 서툰 손놀림은 늘 약간의 살점을 남긴다. 기어이 빛을 받아 은근한 냄새처럼 남아 있다. 낙엽 하나가 골목에 떨어지기까지의 시간은 길었고, 그 여정을 지탱한 결은 오래된 생선살처럼 부스러질 듯 버티며 달라붙어 있다. 그래서인지 바람이 스쳐 갈 때마다 그 잔여는 제 살점을 기억하는 듯 흔들린다.
도시는 그 흔들림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만, 어느 아침의 골목에서는 그런 미세한 떨림이 오래된 식탁의 숨결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발라지지 못한 갈치의 마지막 살점처럼, 낙엽도 끝내 스스로의 계절을 깔끔하게 비워내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것이 작은 허기처럼 발밑에 쌓이고, 허기는 다시 다음 날의 바람을 미리 불러들였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잎 잔해를 더 부서지게 만들었다. 손끝으로 만지면 가루처럼 부서지고, 입김을 불면 흩날리는 먼지가 되었다. 남은 것은 잎 형태의 얇은 윤곽뿐이었다. 낮은 햇빛 아래, 그림자와 섞이며 잎 기억이 필름처럼 겹쳤다. 겨울 빛이 천천히 태워도, 잎의 기억은 아주 얇게 남았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도시의 빛은 잎이 남긴 마지막 결을 조문객처럼 지켰다. 아침 햇빛이 건물 모서리에 걸릴 때, 아주 작은 녹색 떨림이 스쳤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순간이었지만, 그 사라짐이 오히려 오래 남았다. 여름 열대어가 남긴 마지막 지느러미처럼, 환영처럼 흔들렸다.
계절 끝자락, 도시 사물들은 모두 얇은 막을 갖게 된다. 잎이 남긴 색 기억이 스며 있어, 손바닥으로 창문을 쓸면 막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먼 곳을 바라보면 막이 빛에 흔들렸다. 아무도 모르게, 도시 구조물들은 여름 잔해를 흡수한 뒤 천천히 토해낸다. 정체 알 수 없는 박막, 계절의 허물 같은 것들.
시간이 흐르고, 잎이 떠난 자리는 비어 보이지만, 잔여물은 여전히 숨어 있다. 바람의 결, 햇빛 기울기, 그림자 두께, 사물 표면에서 흐르는 빛의 방향. 모두 계절의 흔적이다. 도시에는 잎사귀 없이도 물고기 그림자가 남아 있다. 잎이 만든 환영의 결이 여전히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계절이 지나면, 가로수는 새로운 잎을 돋울 것이다. 색과 빛, 움직임은 달라지겠지만, 지난여름 도심을 헤엄치던 열대어 결은 여전히 도시 표면 어딘가에 붙어 있을 것이다. 잎이 흔들리는 순간마다, 잃어버린 색이 아주 미세하게 되살아난다. 사라진 것의 결이 다시 떠오르는 기묘한 복원, 조용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도시의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