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누구도 그곳을 찾지 않는다.
회전목마가 멎어 선 자리 옆에서 분수대는 마지막 숨을 적셔 넣듯 낮은 물결을 흘렸다. 바람에 밀린 물방울이 허공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흩어질 때, 멈춘 목마의 말들은 여전히 허공을 향해 다리를 들고 있었다. 시간이 빠져나간 자리에서만 들릴 수 있는 금속의 미세한 떨림이, 오래된 음악의 잔향처럼 공기 속에 눅진하게 남아 있었다.
분수대의 물줄기는 계절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낮아졌고, 그 표면에는 회전목마에서 떨어져 나온 조명의 잔광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이 한밤중에 몰래 겹쳐진 듯, 말들은 물빛 위에서 한순간 부유하다 사라졌고, 물은 그 잔상들을 아무 말 없이 받아 적었다가 금세 지워버렸다. 누군가가 손대지 않아도 스스로 흔들리는 장면이었고, 그 안에서만 존재하는 고요가 회전목마의 멈춘 숨과 분수대의 마지막 빛을 천천히 봉인해 가는 중이었다.
도시는 계절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계절을 기억하는 것은 늘 사소한 풍경들이다. 그중에서도 분수대는 유난히 더 많은 것을 견디는 구조물이다. 여름에는 흩뿌리고, 가을에는 잠잠해지고, 겨울이면 완전히 침묵한다. 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밤, 사람도 물도 사라진 원형의 분수대는 마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공회전 속 기계처럼 낮게 울리고 있었다. 그 울림은 금속에서도, 돌에서도 나지 않았다. 오직 공기에서만 만들어지는 진동이었다.
겨울의 분수대는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기억의 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여름의 물기운은 이미 다 빠져나갔을 텐데도 돌 틈 사이에는 이상하게 마르지 않는 냄새가 남아 있다. 낡은 타일 위에서 오래 머물던 햇빛의 잔열, 바람에 실려 들어오던 젖은 초록의 향,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남기고 간 샴푸 냄새 같은 것들. 이런 냄새들은 겨울이 되면 모두 무채색의 막 아래에 갇혀버린다. 냄새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바람은 그 위에 얇은 먼지를 조금씩 쌓는다.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분수대를 잊는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잠깐 ‘아, 여기 분수대가 있었지’ 하고 떠올릴 뿐이다. 분수가 멈춰버린 공간을 지나칠 때는 누구나 조금씩 속도를 낸다. 물이 멈춘 풍경은 괜히 움츠러들게 만든다. 기계가 멈춘 것인지, 도시의 숨이 멈춘 것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정적. 그러나 그 정적만큼 분수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분수대의 바닥은 더욱 안정적인 어둠을 품는다. 여름엔 수면이 빛을 쪼개던 그 자리에서, 이제는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다.
분수대의 바닥은 겨울마다 가장 먼저 얼어붙는 곳이다. 그것은 물 때문이 아니다. 물이 없을 때조차도 바닥은 스스로 얼음을 만들어낸다. 낮게 깔린 한기가 돌에 달라붙어 서서히 모여들고, 마치 물이 고여 있던 자리를 기억이라도 하는 듯이, 같은 형태의 원을 그리며 얼어붙는다. 그 표면은 유리창처럼 투명하지 않고, 무언가 오래 감추고 있는 듯한 우윳빛을 띤다. 그 불투명한 색은 마치 계절이 분수대에게 건넨 방한용 외투 같다.
겨울의 분수대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바람이 다르게 분다. 거리는 전체적으로 건조한데, 분수대에 다가갈수록 공기가 무겁게 눌린다. 여름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물줄기가 오르내리며 만들어내던 압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이다. 물이 사라졌는데도 그 공기의 밀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물이 증발할 때 그 자리를 완전히 비우지 않았던 것처럼. 바람은 항상 그 밀도에 걸려 속도를 조금 늦춘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분수대는 겨울의 바람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가끔은 분수대 위로 눈이 내린다. 눈은 곧장 쌓이지 않는다. 바닥의 한기가 눈송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끝마친 뒤에야 비로소 얇은 층을 만든다. 눈은 분수대를 보호하는 마지막 외피처럼 덮이고, 그 아래에서 분수대는 비로소 완전히 침묵한다. 눈이 쌓이면 모든 흔적이 지워진다. 그 아래에는 지난 계절의 물결 자국도, 바닥에 눌어붙어 있던 동전의 둥근 얼룩도 모두 잠복한다. 눈은 분수대의 상처를 감춘다. 물이 튀어 오르던 날들만이 남긴 미세한 크랙을 하얀 막으로 덮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을 흉내 낸다.
하지만 분수대는 기억한다. 눈 아래 숨어 있는 동전 자국을, 겨울이 오기 전까지 지워지지 않던 습기를, 한때 아이의 손에서 튕겨 올라 물속으로 떨어지던 동그란 금속의 떨림을. 그 동전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일부러 걷어가는 것도 아니다. 동전이 사라지는 과정은 늘 아주 은밀하다. 가을 끝자락 즈음, 바람이 분수대의 바닥을 조금씩 말려갈 때 동전은 서서히 눌어붙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그것은 금속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분해되는 과정 같다. 동전의 물질이 아니라, 손끝에서 건너온 열망이 먼저 사라지고, 남은 껍질 같은 금속은 결국 도시의 먼지 속으로 흩어진다.
겨울의 분수대는 마치 겨울을 견디는 방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분수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움직임을 멈추고, 소리를 없애고, 기억을 땅속 깊숙이 밀어 넣는다. 여름 동안 온몸으로 받아낸 열기와 물의 충격이 겨울에는 어둠과 정적 속에서 응고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멈춤’이라고 생각하지만, 분수대에게 그것은 ‘재정렬’에 가깝다.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구조물의 결은 더욱 단단해지고, 틈새는 제자리를 찾아간다. 여름엔 보이지 않던 균열도 겨울엔 조심스레 봉합된다.
가끔 지나가는 비둘기들이 분수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발을 털곤 한다. 물이 없는 분수대는 새들에게 매력이 없다. 그러나 겨울엔 오히려 새들이 이곳을 더 자주 찾는다. 그들은 분수대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낮고 일정한 냉기를 태연하게 견디면서, 물이 없는 공간에서만 생기는 특유의 고요를 즐긴다. 한때 물기둥이 치솟던 자리에서 비둘기들이 가볍게 몸을 부딪치며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은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게 분수대는 새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에 남아 있는 온도는 이상하게도 생명들에게만 더 잘 전달된다.
해가 조금만 길어지기 시작하면 분수대는 다시 변화한다. 그것은 물을 틀기 전부터 시작된다. 얼음의 결이 흐르고, 돌의 표면이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하고, 바람이 다시 매끄럽게 통과한다. 아직 물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분수대는 여름의 리허설을 한다. 그 리듬은 거의 들리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어딘가에서 유연한 떨림이 감지된다. 그것은 오래 침묵했던 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분수대는 겨울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겨울 속에서 자신을 ‘정제’한다. 여름에 쏟아냈던 물의 에너지와 사람들의 기억을 받아내던 공간적 압력을 서서히 가라앉히며 자기 몸을 다듬는다. 물이 없는 동안 분수대는 오히려 가장 충실하게 숨을 쉰다. 겨울은 그 숨을 지켜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미약한 첫 물줄기가 다시 분수대의 심장에서 떨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새 계절이 시작되는 즉흥적인 신호가 아니라, 긴 겨울 동안 조용히 준비해 온 결과다. 사람들은 그것을 봄의 시작이라고 부르겠지만, 분수대는 알고 있다. 겨울을 견뎌낸 시간 덕분에 그 첫 물줄기가 다시 빛을 얻는다는 사실을.
분수대가 겨울을 견디는 방식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잠시 접어두고, 몸의 균형을 되찾고, 다음 계절을 위해 서서히 자신을 가늘게 조여나가는 과정이다. 분수대는 겨울마다 한 번씩 자신을 닫고, 그 닫힘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생명을 준비한다.
그렇게 분수대는 계절을 잊지 않는다. 오히려 계절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존재로 남는다. 여름의 빛도, 가을의 그림자도, 겨울의 정적도 모두 분수대의 몸 위에서 천천히 누적된다. 그리고 다시 물이 흐르는 순간, 그 모든 층위는 하나의 떨림으로 되살아난다.
겨울의 분수대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단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조용하고 단단하게 다음 계절을 준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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