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해진 가을

봄이 지나간 흔적이 가을이다.

by 적적

가지 끝에 있는 잎들은 낮에 빛나고 낙엽은 밤에....

창백해진 그녀가 돌아왔습니다.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의 손등이 손바닥으로 가만히 말려들어 왔습니다. 그것은 바라만 보던 바다를 파도로 만난 것처럼 차가웠습니다.


푸른 핏줄이 드러난 손등과 유난히 차가운 손바닥은 사막처럼 건조한 것 같았습니다. 그가 핸드크림 뚜껑을 열어 그녀에게 건네자 그녀가 이제 막 사그라드는 모닥불처럼 마른 입술로 웃습니다.

아마도 전화를 받은 건 노을을 보고 있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 붉게 핏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며 잠시 망설이고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혈을 좀 했어요. 지금은 조금 안정됐구요 병실에 있어요 그래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고마워요


그는 하늘에서 태양이 사라져 버립니다. 불 꺼진 극장 안으로 들어선 것처럼 벽을 더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모두 착석한 상태로 조용했으며 몇몇 사람들은 갑자기 침입한 불빛에 고개를 돌렸지만, 그를 쳐다보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가 택시를 타고 그녀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해갔죠.


흘러내린 앞머리를 넘겨주는 일 말곤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는 그의 손길을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가.


문득 그녀는 귀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어요. 손끝에 귀 끝이 닿을 때마다 그녀가 움찔거린다는 걸 알고 귀 뒤로 넘기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이마를 떠날 때마다 다음 머리카락을 이끌며 이마를 덮어왔어요.


괜찮을 거라고 종종 있는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한 건데 올 줄 몰랐단 말을 하염없이 중얼거리던 그녀의 표정이 안도감으로 평온해지고 있었어요.


그녀의 얼굴은 졸업식에 못 오실 거라고 생각한 부모님이 오신 것처럼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너무나 당연한 일에 그녀는 매번 행복해했던 것 같아요.


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들이닥친 가을이라서 더 추웠고 가을이라서 햇살은 우울했으며 오랜만에 비가 멈추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오늘은 더 이상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아야지 하며 올려다본 하늘로 그 짙은 구름 속으로, 태양이 안간힘을 쓰며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그곳에서 한없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몸속 깊은 곳까지 남아있는 모든 숨을 불어 내듯이 힘겹게

차가운 빗줄기가 가져온 거센 바람 속을


그녀의 뺨에 생기가 돌고 당분간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예정입니다.


봄이 말을 다하지 못하고 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