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적적 Oct 19. 2024

벽에 닿지 못하는 밤.

손을 뻗어 하늘을 만지고...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에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김 경주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에서 발췌     


 모든 사물은 그림자를 세우느라 땅을 고르고 그림자가 흐를 작은 도랑을 사물 주변을 파냅니다. 그림자를 세우느라 면을 세워 각을 잡고 마지막으로 작은 손 망치로 고정합니다.     

허공에 조용히 떠 있던 내가 몸을 조금씩 비틀어 허공을 빠져나와 박혀 있던 허공을 두고 다른 허공을 산책하고 있습니다.     


저쪽으로 보는 나는 아직 벽에 닿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나를 비롯한 모든 것에서 고정되지 못해 떨어집니다. 벽에 닿는 일은 나를 고정하는 건 내 몫이 아닐 것이므로      

나를 조금씩 전진하는 일이 벽의 끝을 향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허공을 향해 고정되는 일은 선반이나 그림 액자만의 일은 아닙니다.     


밤이면 깊어지는 건 밀어내는 일상이 빠르게 헐거워지는 노력이므로 나는...

그 밤 짧았던 내가 길어지기를 열망합니다.      

이른 아침에 벽에 닿았을까요 나는....

이 가을에 걸릴 수 있는 풍경인 걸까요     


돌아오는 일에 집중합니다. 아직도 목련 나무는 뇌관이 사라진 폭발물처럼 잎을 날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련 나무 밑에 묻어둔 편지를 파내 봅니다. 활자들은 조금 사라지고 있었죠. 행간을 느리게 읽는 나무의 습관처럼 흙으로 스며든 행간부터 천천히 송두리째 문단을 번지게 읽어버립니다.      


하루를 잘 번지게 읽고 오겠습니다. 오늘의 기억이 돌아와 천장을 보고 누웠었을 때 번져있는 문장들은 난독의 활자였더라도 말이죠.          


토요일 아침도 출근을 해야겠습니다. 먹고사는 일은 숭고하므로     

나도 가끔 숭고했으므로      


힘겨워질 토요일 밤입니다. 날씨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꺼내 놓은 가을남방은 보류되었습니다.      

이 가을엔 내가 아는 누구도 죽지 맙시다.     


보류된 옷과 고양이의 이름과 꽃씨를 피워보지 못한 햇살과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내년을 기다리는 수많은 꽃의 정령들과 그리고 그대가 듣게 될 이 노래가 오늘 밤을 지켜줄 수 있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ohFF5ULhlxI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일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