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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적 Oct 29. 2024

생각은 다음계절을 그리워하고

몸은 아직 이 계절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고

닭은 한 번에 번식시킬 병아리 숫자만큼 알을 둥지에 모아 놓은 다음 품어. 그게 대략 12개쯤 된다고 해. 그 수가 될 때까지 계속 낳는데 그 중간중간 사람들이 하나씩 훔쳐간다면      

닭은 계속 알을 낳을 수밖에 없지.     


암탉은 알을 만들어. 낳기 직전에 페로몬이나 그런 호르몬을 분비하며 나 알 낳을 때 됐다고 광고를 하지.  

   

그럼 수탉은 발정하고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승자는 교미를 하게 되지 그렇게 교미를 하면 유정란이 되고 수컷이 없어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거니까 일단 알을 만드는 거지. 알을 만들어야지 수탉이 발정이 나고 수정을 시킬 테니까.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가 양계장을 하셨던-에게 닭은 왜 달걀을 계속 낳지?라고 묻자 워낙 친절하게 생겼던 친구는 더욱 확신에 차올라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지.     


그리고 그 12개라는 숫자가 또 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었는지, 언제 올지 모르는 희망을 위해 알을 낳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은 못 들은 척 사라져 버렸었지.     


화요일 아침이지만 더 이른 시간에 눈이 깨졌어. 잘 삶아낸 달걀처럼 눈꺼풀에 작은 실금이 생겨나고 틈이 벌어지고 얇은 막이 벗겨지며 앞이 보이는 거지.     


지난밤 써둔 몇 문단은 아직 식지도 않은 채 날개 짓을 멈추지 않고 일어서려고 노력 중이야     

놓여있던 책을 펼치자 문장들은 날아올라 책장 속으로 뛰어올라 먼지를 일으켰지


아침부터 햇살을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태양의 전리품을 나가서 싸울 필요도 없이 한껏 전달받을 수 있다는 건.                    

불어오는 바람을 견딜 수 있는 옷을 입고 흐린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어 최대한 느리게 걸으며 무슨 생각이든 해보려고 해      


일요일 점심때 널어놓고 걷는 것을 잊은 빨래는 새벽이슬을 맞고 축축 해졌겠지만,     

이 만큼의 바람으로도 다시 바싹 말랐다고 바스락거리며 자랑할지도 모르지     


집 안에 있으면 더 추운 것 같아 움직여야 해      

가을이니까 가을라고 생각되니까.     

알을 낳을 거야 숫자도 신경 쓰지 않고 오거나 말거나 매일 낳을 거야.     


매일 하나씩 쓸 거야.     


병아리가 태어나지 않더라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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