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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터무니 없이 단편적인
낙엽수몰지구.
기억의 수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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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적
Oct 20. 2024
저공 비행하는 하늘의 한쪽 날개가 지면에 닿아 작은 물방울을 튀기는 아침입니다.
거리엔 우산이 내리고 있습니다. 빨간색 물에 젖지 않는 샌들을 신은 물방울 하나가 노란 우산을 쓰고 물웅덩이마다 폴짝 뛰어올랐다가 물웅덩이 속으로 사라집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물웅덩이 속으로 사라진 아이는 다음 편 물웅덩이로 훌쩍 뛰어올라 바람에 쓸려 간 빨간 우산을 손에 쥐고 골목으로 들어갑니다.
창문에 닿은 빗방울도 개찰구를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람막이 점퍼가 젖었습니다. 젖은 점퍼가 마르기 전 다시 점퍼를 입고 산책을 다녀옵니다.
아마도 온종일 젖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할듯합니다.
친구와 버스를 타고 여행 중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어릴 때 방학 때마다 가보았던 할머니 댁이 나온다. 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정확하지 않았어요. 아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는지 호수였는지.
저 댐 아래 할머니 댁이 있었어 할머니 혼자 사시던 오두막이었거든 작은 텃밭에선 상추랑 파가 자랐고 실개천도 흘렀는데 할머니 돌아가신 뒤론 그 집도 풍경도 기억이 나지 않아.
가끔 저 깊은 물속을 헤엄쳐 들어가고 싶기도 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오두막집에 헤엄쳐 들어가고 있습니다.
비에 젖은 일요일 아침은 수몰된 댐 아래 마을처럼 적막합니다.
조금만 더 자면 알람이 울릴 텐데…. 어둠이 아직 손을 씻지 못한 시간에 깨어납니다. 불을 켜지 않으면 사물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경계선 만을 지닌 시간입니다.
새벽에 원치 않는 기상으로 문득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그런 장면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깨워서 일어났던 적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곤 저녁이면 잠에 취해 태평양을 건너는 배에서 집어던진 술병처럼 한없이 가라앉기 일쑤입니다.
이제 어둠이 손을 씻고 수건에 물기를 닦아냅니다. 창가로 부는 바람 소리와 맺혀있는 물방울들이 창밖을 드러내기 거부합니다.
아기 고양이 모란이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비가 오면 창가에 앉아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잡고 싶어 창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울던 모란을요.
이제 청소년 모란이 되어 더는 물방울을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그냥 바라다볼 뿐입니다.
그런 모란을 두고 새벽에 깨는 나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빗방울을 바라다보며 걷다가 신발을 흠씬 두들겨 맞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산은 머리와 얼굴을 피하려고 쓰고 다닌 것이 분명합니다. 우산을 쓰고도 젖지 않을 방법을 간구하지 않습니다. 우산을 이리저리 옮겨 쓰는 것이 귀찮은 자는 젖었다 마르고 다시 젖어들 수밖에 없는 하루를 견뎌내야 합니다.
건널목마다 낙엽의 수몰지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던 건지 저토록 깊이 잠겨 있는 것인지....
부디 젖더라도 바람에 날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 젖고 나니 흰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며 푸른 하늘이 드러나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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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모란' 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훔치고 싶은 문장을 파는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은 당신과 나 사이엔 너무 긴 설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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