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양철통 쿠키, 기름종이, 어린 목련 꽃

by 적적

딱히 오늘이 맑았으면 하고 바랄 이유는 없습니다. 청명이란 절기라고 해도 온종일 흐릴 거란 예보는 하늘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때마다 불이 꺼지고 너무나 투명하고 보드라울 재를 불어보듯이 하늘에 대고 후-우하고 입김을 불어봅니다.

어릴 적 호주로 이민을 가셨던 고모는 매년 봄이면 양철통에 든 과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버터를 넣어 만든 동그란 쿠키가 켜켜이 들어차서 흔들어도 안의 내용물은 그다지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양철통은 늘 한 번에 열리지 않았으므로 힘겹게 열었던 기억이 납니다.


양철통 뚜껑을 열면 뿌옇고 아주 얇지만 잘 찢어지지 않는 기름종이가 한 장 들어있었어요. 그 기름종이가 무척 맘에 들었어요. 왜 그 종이가 좋았는지 물으면 할 말은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양철통 속의 기름종이가 생각났어요. 불투명하고 손끝으로 매끄러운 기름이 묻어날 것 같지만 과자 부스러기도 묻어나지 않던 종이였어요


오늘 하늘이 그렇게 뿌옇고 흐렸어요. 그 흐린 하늘로 버터로만 든 쿠키 부스러기 같은 햇살이 눌어붙지도 않고 쏟아져 내렸어요.

가끔 맑은 날 밤이면 나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어둔 하늘로 혼자서 떠오른 달을 바라다보며 달 혼자 쓰기엔 너무 하늘이 넓다고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나무는 거기 있었던 것은 그리 오래돼 보이지 않았어요. 작은 키도 그렇고 다른 가로수들과 다른 수종도 그랬습니다.

그 어둔 밤하늘로 어린 목련 나무 꽃눈들이 가지 끝마다 맺혀있는데 제일 먼저 피워 낸 목련꽃 한 송이는 너무 빨리 피어 있었습니다. 새로 온 목련나무에 꽃이 다 피기 전까지 봄은 아니라고 간혹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늘을 다 차지하고 빛나는 달처럼 목련 나무 한 그루를 독차지하고 핀 목련꽃을 한참을 바라다보다 왔습니다.

더 피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흐린 하늘에 떠오를 달도 볼 수 없는 밤에


단, 며칠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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