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뼈는 관절이 아니다

겨울이 낮은 곳에 남기는 흔적에 대하여

by 적적


그해 겨울 말이에요, 바닥이 유난히 반들거렸죠. 얼음이 녹았다가 다시 얼면서 얇은 층을 몇 번이나 남긴 거예요. 보도블록 위에 유리막 같은 게 눌어붙어 있었죠. 그래서 걸을 때마다 발이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조심해야 했고, 그 조심스러움 때문에 몸이 조금씩 낮아졌죠.



고개도 자연스럽게 숙여지고요. 그러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무릎 아래 풍경이라든지, 신발 끝, 양말이 접힌 자리 같은 것들요. 겨울은 원래 사람의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계절이죠.


카페에 들어갔을 때 의자 소리가 먼저 들렸어요. 철제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였는데, 추위에 금 간 유리컵처럼 날카롭더군요. 테이블 간격도 좁았어요. 무릎이 거의 닿을 만큼요. 손을 움직일 때마다 코트 소매의 털이 조금씩 흩어졌죠. 먼지처럼요. 그 손이 무릎을 스치고 지나갔어요. 스쳤다고 말하면 좀 부족하죠. 닿았고, 닿은 채로 지나갔고, 지나가면서 뭔가를 남겼어요. 온기는 아니었어요. 대신 방향만 남았죠.



그 방향을 따라 바지가 살짝 말려 올라갔어요. 발목 근처요. 흰 복숭아뼈가 드러났죠. 겨울에 드러난 살은 늘 좀 과장돼 보이지 않나요. 더 희고, 굴곡은 더 또렷하고요. 복숭아뼈라는 이름은 달콤한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죠. 늘 신발에 쓸리고, 바람에 맞고, 먼지를 기억하는 자리잖아요. 우연히 드러난 것처럼 보였지만, 우연이라는 건 늘 준비된 장소를 고르더라고요.



그때 문장이 하나 생겼어요. 종이에 쓰인 것도 아니고, 입 밖으로 나온 것도 아니었죠. 복숭아뼈의 윤곽을 따라 슬쩍 생겨났어요. 피부 위에 잠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서리처럼요. 그 문장은 의미를 주장하지 않았어요.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고요. 그냥 있었죠. 겨울 공기처럼 투명했고, 손이 지나간 경로처럼 분명했어요.



겨울에는 소리가 커지죠. 컵을 내려놓는 소리, 의자가 밀리는 소리, 숨이 목을 통과하는 소리까지요. 그런데 그 소리들 사이에서 손이 지나간 흔적만은 소리가 없었어요. 무음의 접촉은 이상하게 오래 남아요. 지우개로 제대로 지우지 않은 연필 자국처럼, 종이 결을 따라 눌린 채로요.



복숭아뼈는 관절 이름이 아니에요. 움직임이 반복되면서 생긴 돌기죠. 수없이 접히고 펴지면서 만들어진 뼈의 습관 같은 거예요. 그 습관 위에 겨울빛이 얹혔죠. 빛은 차갑게 반사됐고, 그 반사가 마치 문장의 시작처럼 보였어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걸까요. 겨울은 그런 질문을 서두르지 않죠.



테이블 위에는 아직 식지 않은 커피가 있었어요. 김이 올라오다 말다를 반복했죠. 김의 경로는 늘 불규칙했고, 그게 오히려 안정처럼 느껴졌어요. 손의 경로도 마찬가지였죠. 늘 일정하지 않았는데, 그날은 유난히 또렷했어요. 무릎에서 발목으로, 복숭아뼈를 스치며 지나가면서 문장을 하나 남겼죠. 그 문장은 방향을 기억하는 장치 같았어요.



밖에서는 눈이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눈들이 공중에 대기 중인 생각처럼 보이더군요. 생각도 그렇잖아요. 언제 떨어질지 모르다가, 떨어진 뒤에야 이름을 얻죠. 문장도 비슷해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문장은 공기 속에 있어요. 복숭아뼈 위에 잠깐 내려앉았던 그 문장은 다시 공중으로 돌아갔죠.



겨울 코트의 단추는 왜 그렇게 단단한지 모르겠어요. 쉽게 풀리지 않게 만들어진 것들이죠. 단단함은 안심을 주지만, 동시에 풀릴 가능성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요. 복숭아뼈는 풀림의 장소였어요. 단추가 아니라 끈, 끈도 아니라 매듭의 흔적 같은 것요. 매듭은 풀린 뒤에도 자국을 남기잖아요.



손은 다시 테이블 위로 돌아왔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컵을 잡았죠. 컵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옮겨갔어요. 온기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아요. 그런데 방금의 접촉은 설명을 요구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죠. 그냥 있었어요.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들이 있죠.


겨울은 반복의 계절이에요. 아침마다 비슷한 어둠, 같은 차가움, 같은 옷의 무게요. 그런데 반복 속에서 아주 작은 차이가 생겨요. 그게 흔적이 되죠. 그해 겨울의 흔적은 복숭아뼈의 흰색에 있었어요. 흰색은 모든 색을 포함한다고들 말하지만, 겨울의 흰색은 배제의 색이더군요. 불필요한 것들을 지우고 남은 윤곽 같은 거요.



문장은 다시 생겼어요. 이번에는 더 작고, 더 얇게요. 문장은 늘 같은 방식으로 생기지 않죠. 어떤 건 상처처럼, 어떤 건 주름처럼요. 복숭아뼈 위의 문장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어요.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선이었죠. 읽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읽히지 않는 문장은 잘 사라지지 않더군요.



카페 유리창에는 김이 서렸어요.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죠. 썼다가 지워지는 이름들요. 지운 뒤에도 유리가 완전히 투명해지진 않았어요. 얼룩이 남았죠. 복숭아뼈 위의 문장도 그런 상태였어요. 의미가 지워진 뒤에도 남아 있는 것요.



겨울 저녁 거리에는 불빛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불빛들이 다 같은 높이에 있진 않았죠. 낮은 불빛은 발목을 비췄고, 높은 불빛은 얼굴을 가렸어요. 발목 근처의 빛은 솔직했어요. 숨길 게 없었죠. 흰 복숭아뼈는 그 빛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받아들인 빛은 다시 문장이 됐고요.



손의 기억은 피부보다 뼈에 오래 남는다고 하잖아요. 뼈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르죠. 복숭아뼈는 그날의 손을 기억하고 있었을 거예요. 기억은 감정이 아니라 압력의 형태로 남아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갔는지, 얼마나 빨랐는지, 어떤 각도였는지요.



겨울밤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어요. 서로 닿지 않으려고 만든 간격이죠. 그 간격은 안전해 보였지만, 공백도 하나의 형태더군요. 형태는 늘 내용을 기다리죠. 그해 겨울의 공백에는 문장이 들어섰어요.



문장은 반복됐어요. 같은 문장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요. 스치고, 드러나고, 생겨나는 방식으로요. 반복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습관의 축적이죠. 습관은 흔적을 만들고요. 흔적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설명은 오히려 흔적을 약하게 만들죠.



복숭아뼈의 흰색은 계절이 바뀌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햇빛 아래에서는 다른 색처럼 보였고, 여름에는 잊힌 것 같았죠. 하지만 잊힌다는 건 삭제가 아니에요. 상태가 바뀌는 것뿐이죠. 겨울이 다시 오면, 같은 자리는 다시 드러나요.



그해 겨울은 아직도 그렇게 남아 있어요. 손의 경로와 빛의 각도, 복숭아뼈의 윤곽과 문장이 생기던 순간들요. 결론은 없고, 설명도 없죠. 그냥 하나의 상태로 남아 있어요. 겨울이 낮게 깔린 상태, 문장이 공중에 대기하는 상태, 스침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로요.


그냥..... 그렇다고.....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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