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것은 밤에 남아

겨울밤, 타인의 방을 바라보는 시간

by 적적


그 겨울은 유난히 밤이 길었다. 해가 짧아진다는 건 늘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그해의 어둠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오후 다섯 시를 넘기면 도시 전체가 천천히 숨을 죽였고, 여섯 시가 되면 거리의 색은 거의 하나로 수렴했다. 검정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겨울 특유의 불투명한 색. 그 색 안에서 사람들은 제각각의 속도로 귀가했고, 창문마다 불이 켜졌다 꺼졌다. 그 모든 움직임은 규칙적이면서도 무심했고, 그 무심함이 오히려 이 계절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 방 안의 난방은 충분했지만 공기는 차가웠다. 온도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였다. 오래된 아파트 특유의 냄새가 있었고, 가끔씩 배관을 타고 올라오는 물소리가 밤의 적막을 잘게 부쉈다.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이 펼쳐져 있었고, 페이지는 며칠째 같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 문장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대신 같은 문단 안에서 맴돌았다. 읽는다는 행위가 멈춘 자리에서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옮겨갔다.



건너편 건물은 이곳보다 조금 더 오래되어 보였다. 외벽의 색은 이미 원래의 색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창문마다 달린 알루미늄 프레임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교체된 것처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중 한 칸, 정확히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다른 불빛들은 밤이 깊어질수록 하나둘씩 사라졌지만, 그 불빛만은 꺼질 기미가 없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형광등 특유의 차가운 빛이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밤에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은 도시에서 흔한 풍경이었다. 야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잠들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혹은 단순히 불을 끄는 것을 잊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가능성은 너무 평범해서 굳이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불빛이 그대로라는 사실이, 아주 조금씩 감각을 자극했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겼고, 새벽 한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불빛은 변하지 않았다. 커튼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림자도 드리워지지 않았다. 마치 그 방 안에는 사람이 없고, 오직 빛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방 안의 상황을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혹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 같은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상상들은 구체적인 서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인물은 만들어졌지만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다.



새벽으로 갈수록 도시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소리들이 살아나고, 밤새 돌아가는 시스템의 숨소리가 은근하게 들려온다. 멀리서 쓰레기 수거차가 지나가는 소리, 간간이 울리는 자동차 경적,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켜졌다 꺼지는 신호등의 불빛. 그런 것들이 겹치면서, 시간은 더 이상 직선이 아니라 느슨한 고리처럼 느껴졌다. 그 고리 안에서 꺼지지 않는 불빛은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어쩌면 그 방 안의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창밖을 바라보며, 이쪽 건물 어딘가의 불빛을 보고 있을 가능성. 그러나 이쪽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불이 꺼진 상태였다. 남아 있는 것은 가로등과 신호등, 그리고 겨울밤 특유의 희미한 반사광뿐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실제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그런 상상은 불빛을 더 오래 보게 만들었다.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형광등은 오래 켜 두면 미세하게 떨리는 소리를 낸다. 물론 창문 너머로 그 소리가 들릴 리는 없었지만, 그 떨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방 안의 정적은 조금씩 흔들렸다.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 누군가의 공간이 아직 밤을 통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빛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시간은 새벽 두 시를 넘겼다. 이쯤 되면 불빛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사건에 가까워진다.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유가 되고, 설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설명은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불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커튼은 닫히지 않았고,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불빛은 더 이상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보는 사람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왜 이 시간까지 깨어 있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있는지. 질문들은 생겨났지만 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질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밤은 충분히 채워졌다.



그 불빛을 바라보는 동안, 방 안의 시계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겨울밤의 공기와 잘 어울렸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시계보다 불빛이 더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무엇이 끝나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끝나지 않은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새벽 세 시를 넘기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머물렀다. 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밤과 계약을 맺은 것처럼, 정해진 시간까지 버티겠다는 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보였다. 그 의지가 실제로 누군가의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전기 시스템의 결과인지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다.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그 사실만이 남았다.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고, 결론도 필요하지 않았다. 겨울밤은 그렇게 상태로 남아 있었다. 꺼지지 않은 불빛, 줄어들지 않은 어둠,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진 시간. 그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pinterest
























화요일 연재
이전 13화우울의 적설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