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으로 기억되는 얼굴

당신은 발췌한 나를 기억하고 있다.

by 적적

사람은 한 권의 책과 닮아 있다. 그러나 그 책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면 한 문장이 덧붙여지고, 어떤 문장은 지워지며, 어떤 문장은 스스로를 복사해 다른 페이지에 남는다. 아무도 그 전모를 읽어본 적 없지만, 누구나 그 일부를 들고 다닌다. 목소리의 억양 속에, 눈동자의 흔들림 속에, 어쩌다 멈춰 선 발끝에 적혀 있다. 혹시 그 일부마저 착각인지, 흐릿한 그림자인지 모른다.



자신을 설명하려 할 때, 사람은 긴 이야기를 꺼낸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무엇을 겪었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그러나 실제로 남는 것은 몇 줄의 문장뿐이다. “그날 나는 두려웠다.” “그녀는 떠났다.” “나는 다시 시작했다.” 삶은 방대하지만, 기억은 발췌본이다. 그 발췌들이 모여 지금의 얼굴을 만든다. 그런데 그 얼굴이 진짜 나인지, 어쩌다 덧붙여진 문장들의 그림자인지, 순간순간 흔들린다.


어쩌면 존재란, 스스로를 인용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르는 문장을 반복하며 길을 잃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불쑥 떠오른다. 이유 없이 환하게 웃던 오후,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 번지던 밤. 장면은 완전하지 않다. 냄새는 흐릿하고, 색은 바래 있으며, 목소리는 잘려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문장이 하나 있다. “나는 혼자였다.” 혹은 “나는 괜찮았다.” 그 문장이 세월을 건너와 지금의 선택을 밀어 올린다. 동시에, 문장은 나를 붙잡고 흔들며 묻는다. 정말 내가 그 문장일까, 혹은 단지 기억의 잔해일까.



우리는 종종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르는 것은 욕망이 아니라 문장의 출처다. 오래전에 써진 문장이 지금의 입술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두렵다. 오래전 누군가의 말, 오래전 실패, 오래전 상처. 그것들은 이미 문장이 되어 내면 깊숙이 박혀 있다. 사람은 그것들을 읽으며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 내어, 때로는 침묵으로. 어쩌면 읽는다는 것조차 착각일 수 있다.


사랑 또한 한 문장이다. 장황하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단순하다.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지 않아.” 한 줄의 선언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사랑은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반복되는 선언이다. 반복은 감정이 아니라 흔적이 된다. 같은 말이 다른 날 다른 온도로 쓰일 때, 사람은 그것이 사랑인지 두려움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장은 남는다. 남아서, 숨 쉬며, 다시 읽힌다. 그럼에도 혹시 우리는 그 문장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한다.



삶에는 지워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충분하지 않다.” 어두운 잉크로 쓰여 쉽게 번지지 않는다. 사람은 그 위에 새로운 문장을 덧쓴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해보자.” 그러나 이전 문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배경이 되어, 새로운 문장의 의미를 바꾼다. 때로 그 배경마저 꿈처럼 흔들린다.



어떤 날에는 자신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찢긴 노트처럼 느껴진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어색하게 벌어져 있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같은 이야기가 다른 어조로 반복된다. 그러나 불완전함 속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완벽하게 정리된 서사는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쓰임마저 내가 통제하지 못할 때, 마음이 잠시 멈춘다.



사막을 건너는 순례자처럼, 사람은 자신의 문장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모래바람이 불면 글씨는 흐려지고, 태양이 내리쬐면 종이는 타들어 간다. 그럼에도 문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피부 아래로 스며들어, 맥박과 함께 뛴다. 길 위에서 만나는 타인들은 서로의 문장을 스쳐 읽는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 알아본다. “아, 이 사람은 그런 문장을 가진 사람이구나.” 그러나 그 알아봄조차 흔들리고 착각일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누군가는 용서라는 문장을 품고 있고, 누군가는 복수라는 문장을 숨기고 있다. 또 다른 이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적는다.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이 되며, 성격은 운명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쓴 문장에 의해 이끌린다. 그것이 무의식이라 불리든, 신의 계획이라 불리든, 결국 한 줄의 문장이 방향을 정한다. 동시에 그 방향조차 순간마다 흔들린다.



문장은 언제나 수정 가능하다. 그것이 삶의 신비다. 아무리 오래된 문장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나는 혼자였다”는 문장은 “그래서 나는 자유로웠다”로 변할 수 있고, “나는 실패했다”는 문장은 “나는 배웠다”로 이어질 수 있다. 해석이 달라질 때, 문장은 같은 채로 남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빛을 띤다. 그러나 그 빛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일지, 순간마다 의문이 스친다.



중요한 것은 문장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는 것이다. 동시에, 읽는 내가 문장을 오해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조용히 내면을 펼친다. 하루 동안 새로 쓰인 문장들을 만져 본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 삼켜버린 고백, 끝내 보내지 못한 메시지. 작은 활자처럼 가슴 안쪽에 박혀 있다. 사람은 그것들을 하나씩 읽으며 묻는다. 이것이 정말 나인가. 혹은 오래된 문장들이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인가.



질문은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또 하나의 문장이 되어 남는다. “이것이 정말 나인가.” 그 문장은 다음 날 선택에 스며든다. 사람은 다시 길을 걷고, 다시 말을 하고, 다시 사랑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장이 추가된다. 그 문장이 정말 나의 것인지, 순간순간 흔들리며 묻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발췌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전체로 이해되기보다, 부분으로 기억된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한 문장으로 남는다. “그는 따뜻했다.” “그녀는 멀어졌다.” 한 줄이 한 사람의 전부처럼 남는다. 그러나 그 한 줄만으로 한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남는다. 사람은 타인의 책 속에서 인용문이 된다.



정체성은 거대한 정의가 아니라, 이미 쓰여 있는 몇 줄의 문장 속에 있다. 완전한 설명이 아니라, 반복되어 남은 흔적 속에 있다. 반복은 옅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게 새겨진다. 같은 문장을 다시 쓰는 동안 사람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문장은 여전히 거기 있다. 오래된 길 위에 남은 발자국처럼, 비가 와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자국처럼, 흔들리며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하나의 문장이 쓰이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끝맺음도 없다. 다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숨이 들고 나는 리듬처럼,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는 움직임처럼. 그 리듬 속에서 나는 잠시 멈칫하며 의문한다.



내 안에서 발췌된 문장이 나다. 그러나 그 문장은 아직 책 속에 고정되지 않았다. 오늘의 숨



결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고, 내일의 빛에 따라 다른 그림자를 드리운다. 끝나지 않은 채로, 멈추지 않은 채로. 그 문장은 지금도 쓰이는 중이다. 그리고 그 문장이 과연 나를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며.

사진 출처> pinterest














이전 04화산화된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