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가능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가장 조용한 방식
아침은 늘 비슷하게 시작되죠. 그런데 그날 공기는 좀 달랐어요. 밤새 체온을 머금고 있던 이불이 천천히 식으면서 피부에서 떨어질 때, 묘하게 붙잡는 느낌이 남더군요. 그게 꼭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았죠.
창문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열려 있었어요. 그 틈으로 들어온 공기는 아직 겨울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 얇은 냉기를 품고 있었죠.
그 안에 다른 계절의 기척이 섞여 있었어요. 아주 희미한 꽃향기 같은 것. 아니면 꽃이 피기 직전 나무에서만 나는, 약간 습하고 달콤한 냄새요. 계절이 바뀌었다는 확신이라기보다는, 바뀌고 있는 중이라는 신호 같은 거죠.
셔츠 단추를 채우면서 거울을 봤어요. 얼굴은 어제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피로도 비슷했고, 표정도 그렇고, 눈의 깊이도 그대로였죠. 그런데 이상하게 낯설었어요. 이 얼굴이 오늘 하루 내내 유지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손목시계를 차는 동작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죠. 금속이 피부에 닿을 때의 차가움, 그리고 그 차가움이 서서히 체온에 녹아드는 과정까지요.
회사로 가는 길은 늘 정해져 있죠. 거의 의식 같은 거예요. 횡단보도의 흰 줄은 닳아 있었고, 신호등은 언제나 같은 리듬으로 색을 바꿨죠. 편의점 앞에는 늘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에 모여 있었고, 세탁소 간판은 바람이 불 때마다 짧은 금속음을 냈어요.
그날은 모든 게 좀 더 선명했어요. 특히 가로수길에 들어섰을 때요. 시야가 확 열리면서 벚꽃이 펼쳐졌는데, 그게 그냥 풍경이 아니라 무대 장치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벚꽃은 이미 만개한 상태였고,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죠. 가지에 붙어 있는 꽃들은 아직 온전했지만, 바닥에는 이미 수많은 꽃잎이 쌓여 있었어요.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떨어진 뒤에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죠. 바람이 스치면 조금씩 밀리고, 사람들 발에 밟혔다가 다시 흩어졌어요. 그 위를 걸으면 발바닥에 아주 얇은 막을 밟는 느낌이 전해졌죠. 소리는 거의 없었는데, 촉감은 분명했어요.
출근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흐름처럼 움직였어요. 각자 속도는 달라도 전체적으로는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물 같았죠. 얼굴들은 대부분 무표정이었어요. 아니면 감정이 너무 오래 유지돼서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상태였죠.
그 속에서 조금씩 분리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같은 방향으로 걷고는 있는데, 같은 목적지로 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요. 그때 문장 하나가 떠올랐죠.
납치되고 싶다.
이상하게도 그건 충동이 아니었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결론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죠. 그 순간 바람이 방향을 바꿨어요. 벚꽃 잎이 한쪽으로 쓸리듯 움직이면서 시야를 가로질렀죠. 그 사이로 길가에 서 있던 검은색 차량이 보였어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시선이 붙잡혔죠.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어요. 아주 미세하게 열려 있었는데, 그게 단순한 틈이 아니라 경계처럼 보였죠. 안과 밖을 나누는 선 같은 거요.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어요. 일부러 멈춘 건 아니었어요. 몸이 먼저 반응했죠. 주변 소리가 한 단계 낮아진 느낌이었어요. 엔진 소리, 사람들 말소리, 신호등 소리가 전부 얇은 막 뒤로 밀려난 것처럼 희미해졌죠. 대신 작은 소리들이 또렷해졌어요. 꽃잎이 아스팔트에 닿는 소리, 옷감이 스치는 소리 같은 것들이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요.
고개를 돌리는 동안 이미 모든 게 진행되고 있었죠. 손이 얼굴을 덮었어요. 생각보다 부드러운 손이었고, 체온보다 조금 낮은 온도였죠. 동시에 다른 손이 입을 막았어요. 숨이 순간적으로 막혔죠. 비명을 지르려는 반응은 있었는데, 행동으로 이어지기 전에 이미 차단됐어요.
이상하게도 공포는 바로 오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다리던 일이 도착한 느낌이었죠.
몸이 뒤로 당겨졌어요.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중력이 잠깐 방향을 잃은 것 같았죠. 아주 짧게 허공에 매달린 느낌. 그때 시야 한쪽에서 벚꽃 잎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어요. 비현실적으로 느릴 정도로요. 꽃잎의 가장자리, 색의 미묘한 변화, 공기와 마찰하는 흔들림까지 전부 보였죠.
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공기가 달라졌어요. 외부 공기는 차단되고, 내부 공기가 들어왔죠. 가죽 냄새, 먼지 냄새, 아주 희미한 방향제 향이 섞여 있었어요. 문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울렸고요.
손목이 잡히고 끈이 감겼어요. 거칠긴 했지만 피부를 베지 않을 정도였죠. 묶이는 과정이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준비된 느낌이었어요.
옆에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존재는 분명했는데, 형태는 잘 보이지 않았죠. 어둠 속에서 윤곽만 간헐적으로 드러났어요. 호흡은 일정했고, 움직임은 거의 없었죠. 그 절제된 움직임이 더 많은 걸 말해줬어요. 서두르지 않는 사람,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는 유형이었죠.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엔진 진동이 등을 통해 전달됐어요. 일정한 리듬이었고, 몸이 점점 그 리듬에 맞춰졌죠.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간헐적으로 내부를 스쳤어요. 그때마다 상대의 일부가 보였다가 사라졌죠. 턱선, 손가락, 어깨. 그런데 그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입을 막고 있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어요. 공기가 다시 들어오면서 입안이 좀 말라 있었죠. 말을 할 수 있었는데, 말은 나오지 않았어요. 대신 감각을 하나씩 확인했죠. 손목의 압박, 좌석의 질감, 발끝의 떨림 같은 것들요.
그때 이상하게 안정감이 느껴졌어요.
회사에서는 이미 출근 시간이 지났겠죠. 누군가는 시계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거고, 누군가는 아무 관심도 없을 거예요. 그 반응들이 너무 쉽게 예상됐죠. 그래서 오히려 지금 상황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어요. 지금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차는 계속 어디론가 향했어요. 시간 감각은 흐려지고, 대신 공간의 변화가 더 크게 느껴졌죠. 빛은 줄어들고, 소리는 사라지고, 어둠은 점점 짙어졌어요. 그 안에서 감각은 더 예민해졌죠. 숨소리 하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의미가 생겼어요.
차가 멈췄어요.
엔진이 꺼지자 진동이 완전히 사라졌죠. 그 정적이 오히려 소리처럼 느껴졌어요.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어요. 흙냄새가 났고, 약간 습기가 섞여 있었죠. 도시랑은 다른 공기였어요.
다시 손이 잡혔어요. 이번엔 좀 더 강하게요.
차 밖으로 끌려 나가자 발바닥에 땅의 질감이 느껴졌어요. 아스팔트가 아니었죠. 더 거칠고 불규칙했어요. 동시에 시야가 가려졌어요. 천이 눈을 덮으면서 완전히 어두워졌죠. 빛이 없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차단된 어둠이었어요. 방향 감각이 바로 무너졌죠.
몇 걸음인지 알 수 없었어요. 대신 공간이 계속 바뀌는 게 느껴졌어요. 계단을 오르고, 문이 열리고 닫히고,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죠. 좁아졌다 넓어졌다 다시 좁아지고요.
그리고 멈췄어요.
눈을 가린 천이 풀렸죠. 빛이 한꺼번에 들어왔어요. 시야가 하얗게 번지다가, 천천히 형태가 잡혔죠. 앞에 누군가 서 있었어요. 실루엣만 보였죠.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어요. 빛이 뒤에서 들어왔으니까요.
그 상태가 이상하게 자연스럽더라고요.
손목을 묶고 있던 끈이 풀렸어요. 압박이 사라지면서 혈액이 다시 흐르는 느낌이 났죠.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어요. 곧 사라질 흔적이었죠.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어요. 어떤 흔적은 피부가 아니라 감각에 남는다는 걸요.
고개를 들었어요.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는 분명했죠. 아침에 집을 나서던 그 순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다시 그 벚꽃길을 걷게 되더라도, 그건 이미 다른 풍경일 거예요. 그리고 그 변화가, 이 모든 일의 가장 정확한 결과였죠.
문득 납치장면을 목격했던 회사직원이 한 명쯤 있었기를 바랐어요.
그냥… 그렇다구.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