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지금'처럼만
퇴근길, 고된 하루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터벅터벅 걷다 허름한 슈퍼 문을 열고 들어서
가게 안 냉장고에서 맥주 2병 꺼내 들고
평상에 앉아 거품 가득 넘치게 따라 숨도 쉬지 않고 한 잔 쭈욱 들이키는 느낌,
전주를 대표하는 명물 주류(?)문화 중 하나죠. 가맥, 가게맥주집!
수요미식회에 등장했던 가맥집 <전일슈퍼/전일갑오>에 도착했네요.
사실상 제게 전주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가맥이라 할 수 있죠. 음화화화화
"먹을 게 식도까지 차서 안 먹으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반마리를 내가 먹고 있더라."
- 수요미식회 전현무
이 말에 아니 어느 정도 맛이길래 유아동입맛인 그를 사로 잡았단 말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왠만해서 동해안에서는 볼 수 없는 갑오징어를 판다는 사실, 호잇호잇!
인천 살 땐 갑오징어 한 짝 사다가 말려도 먹고, 국도 끓여 먹고, 튀김도 해 먹고,
그냥 오징어보다 통통한 것이 씹히는 식감도 더 좋고, 맛있거든요.
또 갑오징어 사이 뼈는 햇볕에 말려 쓰기도 하고
(사실, 그 땐 갑오징어 뼈를 말리시길래 그냥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시죠?
갑오징어 뼈를 갈아 피나는 곳에 뿌리면 지혈효과도 있고 상처가 빨리 아문다는 것)
요모조모 맛있고, 알뜰살뜰 쓸모많은 갑오징어였는데,
동해로 이사오다 보니 갑오징어 구경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전일갑오에서 갑오징어를 판다니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란 말입니까,
음,, 근데 전일갑오의 갑오가 갑오징어의 갑오인가요? ^^;;; 급 궁금해지네요.
암튼, 전주한옥마을을 지나 가맥집 전일슈퍼에 도착했는데요.
낯선듯 낯설지 않은 정겨운 풍경 속 자리를 잡고,
황태구이 1마리(8,000원), 갑오징어 작은 걸로 한 마리(15,000원) 시켜놓고
맥주는 스스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시면 됩니다. 맥주 1병에(2,200원쯤?)
연탄불 위에서 바삭하게 구워진 황태 한 마리가 자태를 드러냈는데,
진짜 바샥바샥, 과자같아서, 무한흡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왜 맥주와 찰떡궁합인지 자꾸 먹다보니 알겠더라고요.
보풀보풀한 황태를 먹다보면 어느 순간 목구멍이 뻑뻑해짐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 때 차디찬 맥주 한 모금을 꿀꺽꿀꺽 마시게 되는 거죠. ㅋㅋㅋ
갑오징어 구이는 전 좀 촉촉한 반건조 오징어를 생각했는데 바싹 발린 오징어라 그 감흥이 좀 덜했지만
청양고추 들어간 달짝지근한 간장에 찍어 먹다보면 자꾸 손이가요. 손이가~ ^^
아! 황태구이는 포장이 된다고 해서 한 마리 포장해 울산으로 들고 왔는데요.
함께 나오는 간장도 일회용 용기에 2팩 포장해 주고 청양고추도 팩당 3개씩 도합 6개 싸 주더라고요.
센스만점!!! ^^
기사를 검색해 보니 5월쯤인가? 전주가맥축제도 열렸더라고요.
사실 전국적으로 작은 축제들이 정말 많이 열리고 있는데요.
이렇게 특색있는 축제는 좀 더 색깔을 덧입혀 발전시켜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주에 가면~ 전일슈퍼 외에 가맥집이 상당히 많으니까, 가맥의 문화를 한 번 즐겨보셔도 좋겠죠?
전주한옥마을을 빠져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전주자만벽화마을이 있더라고요.
통영에 동피랑 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울산 신화마을,,, 울산 인근에도 꽤 많은 벽화 마을이 있는데
전주에도 자만벽화마을이 생겼네요.
사실 자만마을은 승암산 능선 아래에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곳이라고 해요.
83가구에 155명이 사는 작은 마을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마을이었는데
2012년 담장에 벽화 그리기 작업이 진행되면서 주목을 끌기 시작했데요.
벽화 사이사이 까페들이 꽤 많이 눈에 띄더라고요.
골목 사이사이 조용히 산책하다가 맘에 드는 까페에 앉아 차 한 잔해도 더 없이 좋을 공간이더군요.
다음에는 저기 보이는 <꿈꾸는 봄>도 가 보고 싶네요.
전주의 풍경을 보면서 조금은 미묘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라지는 옛 것들을 새롭게 지켜가는 것에 대한 뿌듯함도 있었지만
왠지 뭔가 상업적인 면모가 너무 많이 드러나 그 뿌듯함이 퇴색되는 느낌이랄까요?
옛스러움이 다시 생명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지만 것이
다시금 재탄생, 재창출되는 문화에 있어서는 조금은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
하~ 이제 숙소로 향해볼까요?
여행 중 가장 고심해 선택하는 곳이 숙소인데요.
한옥게스트하우스에서 묵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음,,, 그래도 잠자리는 좀 푹신해야한다는 지론에
<전주영화호텔>을 선택했네요. 리뷰가 꽤 괜찮더라고요.
깨끗하다고, 물론 블라블라 조금 실망스러웠다는 부분도 있었지만 잠을 푹 잤다기에 선택했는데,,,
저도 블라블라블라,,,
실망1. 주차장이 너무 협소하더라고요. 이미 꽉 차 있던 상태라 호텔 바로 옆 사설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기에
당연히 호텔에서 주차비를 지불하리라 생각했는데, 반은 투숙객이 부담을 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 -;;;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쩜,,, 실망!
하지만 뭐,, 숙소가 깨끗했던지라, 실망은 패스,
저녁은 배가 부른 관계로 라면에 전일슈퍼에서 남은 오징어와 황태+맥주로 마무~~~의리~
실망2. 사진엔 없지만 호텔 조식이,, 느무 부실하옵니다.
가지 수를 많이 하지 마옵시고,
계란, 소시지, 빵, 잼, 과일 한 가지라도 좀 튼실한 재료로 해 주심이 어떠할른지,
이건 그냥 건의 사항, 조식은 호불호가 있더라고요.
"자꾸 뒤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시계는 차지마. 시계는 자꾸 몇 시인지, 얼마나 지났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걱정하게 하지마. 초조해 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져. 계속 앞으로만 가. 알겠지."
- 영화 <파니핑크> 중에서
죽어가는 오르페오가 파니핑크에게 이별을 앞두고 남긴 대사죠.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져.
우린 항상 어제의 후회, 오늘의 한숨, 미래의 걱정으로 점철돼 있지 않나 싶어요.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은 망각한 채 말이죠.
지난 여행의 행복을 떠올리며 즐거움에 퐁당 빠져있다보니,,,이런 생각이 드네요.
지금부터라도 어제의 행복, 오늘의 즐거움, 미래의 설렘으로 꽉 채워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