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티비를 없앤 것
우리 집에는 원래 티비가 있었다.
나는 늘 결혼 전부터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티비가 없는 집에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1년쯤 지났을 때 티비를 없애자고 남편과 의논했지만 남편은 티비를 완전히 없애는 것에 대해 처음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동안 남편을 설득해 드디어 티비를 없애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에도 아이가 있던 없던 티비는 틀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티비가 없어진 자리에는 책장이 들어왔다. 아이의 책 읽기가 폭발적으로 시작되었던 것도 이 시기인데 때마침 책장이 들어와 주어 아이의 책을 더 많이 채울 수 있었다.
내가 티비를 없앤 것은 첫 번째로 우리 집은 티비가 있어도 틀지 않는 집이고, 두 번째로 티비를 틀어야 할 상황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틀 수 없는 환경이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티비가 없는 환경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심심해서 티비를 보는 것만큼은 없었으면 했다. 나는 아이가 심심하길 바랐다. 심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아내고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티비가 없으니 아이는 정말로 심심함을 모르는 아이가 되었다. 5살인 아이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심심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서의 생활이 심심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심심한 상황이 되면 아이는 방에 들어서 혼자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세 시간씩 책을 봤다. 놀라웠다.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남자아이가 그렇게 집중해서 오랜 시간 책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심심한 환경에서 바닥에 뒹구르기도 하고 멍하니 공상에 잠기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나는 아이에게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특히 지금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짧은 동영상 하나도 길어서 차마 끝까지 다 보지 못하는 이 시대의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더 느긋해지는 것, 생각하는 것,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아이를 그냥 심심하도록 두는 것, 그거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