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도 없던 집사가 되었다
때는 2021년 봄, 드디어 독립을 했다.
늘 꿈꿔 온 독립생활에는 털 동물이 있었다. 특히 강아지.
본가에서는 엄마가 동물을 너무 무서워하고 싫어해 동물을 사랑하는 아빠, 나 그리고 동생은 동물농장만 보는 신세였다. 그러나 동생은 결혼 후 바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고, 나는 언젠가 데려올 강아지와의 생활을 꿈꾸며 최근 몇 달 동안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차를 가지게 된다면, 강아지를 유치원을 보낼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게 된다면 꼭 그곳에서 마음 맞는 강아지를 입양하리라.
내 계획대로라면 5년 후쯤 강아지를 입양할 생각이었다. 일단 내년 차를 뽑을 계획이었고 돈을 좀 더 모은 후에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지면 반드시 데리고 와야지. 그동안 동물농장하고 세나개(세상의 나쁜 개는 없다)로 열심히 강아지 공부 해둬야지. 삼십 대 중후반부터 오십 대까지 강아지랑 둘이 오손도손 여행 다니면서 사는 삶. 아주 완벽한 인생 플랜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독립한 지 세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여름 어느 날이었다.
동생이 회사 앞 화단에 새끼 고양이가 소리 높여 울고 있다고 가족 단톡방에 고양이 영상과 사진을 잔뜩 보내왔다. 온종일 지켜봤는데 어제부터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 어미가 새끼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오늘도 태풍이 예보되어 걱정되지만 자기 집에는 고양이가 이미 세 마리가 있어서 못 데리고 갈 것 같다고 했다. 마침 내가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기에 동생은 내가 데리고 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동물 사랑단으로서 모르는 척을 할 수 없었다. 퇴근하고도 그 자리에 있으면 내가 임시 보호를 하고 좋은 집으로 입양을 보내겠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퇴근 후 바로 동물병원에서 검진을 마치고 고양이 용품을 잔뜩 사서 우리 집으로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처음으로 마주한 크림치즈색의 고양이는 1.4kg으로 아주 작았다. 꼬리는 짧뚱한 데다 번개 모양으로 꺾여있는 모양이 어쩐지 우습기도 했다. 그 작은 고양이는 자기를 구해줄 사람을 아는 건지 내 발을 꼭 끌어안고서는 내 발이고 허공이고 되는대로 꾹꾹이를 하면서 골골거리는 데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살면서 이런 이상한 감정은 처음이었다.
동생 말로는 고양이가 병원에서도 수의사 선생님께 꾹꾹이를 하고 골골 소리가 너무 커서 청진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동생에게 들으면서 고양이를 자세히 보니 귀에는 끈끈이가 묻어있었고 검은색 귀지가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많았다. 병원에서 작은 카메라를 넣어 봤을 때 귀 안에 엄청난 수의 진드기가 보였고 그 때문에 귀지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 고양이는 오늘 종일 내내 소리 높여 울었는지 집에 와서는 힘없이 쉰 목소리로 야옹거려서 가엾기도 했다. 그렇지만 독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당장 고양이를 책임지기엔 잘 돌봐줄 자신이 없었다. 아직은 나 자신을 돌보기에 벅찼다. 한 생명을 평생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너무 무거웠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꼭 내가 좋은 집으로 보내줄게’ 다시 다짐했다.
입양 홍보를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내내 고양이 수의사 유튜브만 봤다. 분명 임시 보호만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연약한 고양이가 갑자기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거실에 펫 캠도 설치해 두었다. 회사에서는 고양이에게 좋은 사료와 모래 서치를 해댔다. 사실은 미니 캣타워도 이미 장만해 버렸다.
저 쥐콩만한게 집에 온 첫날부터 화장실을 가리는 게 너무 신기했고, 꼭 내 품에 안겨서 잠이 드는 것도 신기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나를 이렇게까지 따르는 건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 자그마한 고양이는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매일 소리를 지르며 현관으로 뛰쳐나왔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엽고 고마웠다.
퇴근하면 정적만 흐르던 집에서 나를 요란하게 반겨주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라니. 물론 야행성인 고양이답게 새벽에도 놀자고 뛰어다니고 발을 물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했다. 이 사랑스러운 털 동물을 다른 곳에 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비가 쏟아지던 날 갑작스레 찾아온 크림치즈색의 고양이를 평생 책임져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고양이가 온 후 나는 여행을 길게 가지도 못하고, 퇴근 후 바로 귀가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아이의 분홍 발바닥에 코를 박고 부드러운 털을 만지고 있노라면 행복하기만 하다. 인생은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기도 하지만 우연의 연속을 이겨내며 필연을 만들기도 한다는 걸 운명 같은 아기고양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는 삶이 만족스러운 만큼 너도 나와 함께하는 삶이 만족스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