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석을 만나다.

길에서 발견한 1,300만 년 전의 시간

by 빛나다온

아이들과의 작별 후 맞이한 첫 주말. 시끌벅적하던 교실의 소리가 뚝 끊긴 듯한 허전함에 나의 러닝코스인 바다로 향했다. 바람은 제법 불었지만 반팔 차림의 사람들도 보일 만큼 공기는 이미 봄이었다. 나 역시 가벼운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로이킴의 '봄봄봄'을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봄~봄~봄. 이 왔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역시 봄이 좋구나! 좋다. 좋아~"


스카이워크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윤슬로 반짝였고 저 멀리 구멍돌(돌피리)들이 지천이었지만 그곳은 출입 금지 구역이었다. 아쉬움을 안은채 왼쪽 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투박한 지층들이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시야에 들어왔다. 가슴이 뻥 뚫리는 바다 풍경까지 더해지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정말 근사한 곳에 살고 있구나." 계단 난간 때문에 지층을 만져볼 수는 없었다. 아니면... 내 팔이 짧아서였을까?


계단 끝에 오르니 등산로가 이어졌다.


산바람을 맞으며 조금 더 걸어가자 저 멀리 매화가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꽃을 보려고 다가가던 중 길 한가운데 놓인 회색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 돌들을 들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팝콘처럼 보이는 예쁜 매화


https://brunch.co.kr/@paleo/102

팔레오 작가님의 <포항은 대형물고기 화석의 천국>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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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과 금속탐지를 취미로 돌 속에 박제된 태고의 시간을 읽어내는 팔레오 작가님의 글을 떠올렸다. 그 밀도 높은 기록들을 읽으며 내 안에도 '혹시'라는 작은 호기심이 자라고 있었나 보다. 혹시... 이 작은 돌멩이 속에도 시간이 살고 있을까? 조심스레 돌을 들춰보았다. 5cm~10cm 남짓한 작은 돌들을 요리조리 살피던 그때 나뭇잎 모양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뭇잎 크기를 가늠하고자 USB와 비교를 해본다.

"어? 이거... 나뭇잎 모양 같은데?"
신기해서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아무리 봐도 정교한 나뭇잎 자국이었다. 발견 장소는 그저 평범한 산책길. 수많은 등산객의 발길에 밟혔을 텐데 이 작은 돌은 깨지지 않고 그 긴 시간을 버텨내다니 참 대단하구나. 이 친구는 나를 만나려고 그 긴 세월을 버텨낸 걸까? 너와 나는 만날 운명? 이었던거니?


팔레오 작가님 글에 따르면 포항의 두호층은 나뭇잎은 물론 대형 고래 화석까지 발견되는 '화석의 노다지' 라고 해요. 아주 오래전 육지의 나뭇잎과 바다 생물들이 토사와 함께 쌓여 만들어진 지층의 비밀이 내 앞에 나타난 건가? 작가님이 말씀하신 약 1,300만 년 전(신생대 마이오세)의 시간이 억겁의 세월을 뚫고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기분이었다.


한 번 눈이 트이니 멈출 수가 없었다. 쪼그리고 앉아 맨손으로 돌을 뒤적이며 셔터를 눌렀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산길 바닥에서 혼자 뭐 하는 사람인가' 싶은 눈빛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망치는 없는 맨손이었지만 살짝 들춘 돌 아래에서 또 다른 무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또 뭐지?"
보물 찾기가 따로 없었다.

정신없이 화석을 찾다 보니 어느새 주변이 고요해졌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급히 산을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 화석 표면을 살살 닦아내니 제법 나뭇잎의 자태가 또렷해졌다. 전문가가 보시면 소박한 돌조각일지 몰라도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첫 화석'이다.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난 1,300만 년 전의 시간. 나를 만난 행운을 거머쥔 너에게 '행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이번엔 운 좋게 나뭇잎과 인사를 나눴으니 다음엔 은빛 비늘의 기억을 간직한 물고기 화석도 꼭 만나볼 수 있기를...

팔레오 작가님께 미리 허락을 구하지 못하고 작가님의 귀한 통찰을 제 글에 살짝 빌려왔습니다. 작가님의 너른 양해를 바라며 조만간 멋진 물고기 화석 소식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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