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있다요.~
"어머니, 이번 주말에 저랑 사우나 가실래요?"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아마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시어머니랑 목욕탕을 가?"라는 놀라는 목소리와 "어머, 정말 효부네!"라는 감탄사 사이 그 어디쯤. 하지만 나에게 이 질문은 단순한 효도도 어려운 숙제도 아니다. 그것은 20대 시절에 내 결핍을 채워주던 따뜻한 온기로 돌아가는 초대장이다.
지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남편의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결혼했느냐고(술, 담배를 하지 않아 재미없을 거라고 느껴서 인듯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한다.
"나, 우리 시어머니 보고 결혼했어."
20대 시절, 처음 방문한 남편의 집에서 나를 맞이한 건 어색한 통성명이 아니었다. 어머님은 갓 지은 밥 냄새와 함께 "어서 와라, 밥은 먹었냐? 먹고 싶은 거 있니? 일단 밥부터 먹자."라며 내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셨다. 일찍이 친정어머니를 여의고 '엄마의 정'에 목말라 있던 나에게 그 따뜻하고 맛있는 밥 한 그릇은 백 마디 사랑 고백보다 강렬했다.
여기에 묵묵히 사랑을 표현하시던 시아버님도 한몫하셨다. 뵐 때마다 손에 쥐여주시던 용돈. 그 따뜻한 배려는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후하신 아버님의 마음씨에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 투박하고도 진한 정이 좋아 나는 이 집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결혼 생활이 늘 꽃길은 아니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끊이지 않던 제사였다. 일 년에도 몇 번씩 돌아오는 제사상은 며느리로서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제는 그 제사가 모두 없어졌다. 갈등의 불씨가 사라지고 나니 시댁에 대한 나의 불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장애물이 걷히고 나니 비로소 어머님의 진심과 사랑이 더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갓 결혼했을 무렵 우리는 종종 목욕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섰다. 딸이 없는 어머님에게 나는 하나뿐인 딸이었고 나에게 어머님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정 엄마 같은 어른이었다.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나누던 뜨끈한 수증기 속 대화들. 그때의 우리는 참 가까웠다.
하지만 세월은 자연스레 우리를 바쁘게 만들었다. 아이를 키우고 직장 생활까지 병행하며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시댁 일에는 조금씩 소홀해졌다. 그렇게 함께 목욕탕에 간 지가 십수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지금 우리는 한건물에서 위아래층에 산다. 어머님은 여전히 김치며 밑반찬을 부지런히 해다 주시고 나 역시 맛있는 음식을 하면 접시에 담아 아래층 문을 두드린다.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거리지만 정작 마음의 거리는 세월의 무게만큼 조심스러워졌던 걸까.
며칠 전, 계단을 내려가다 마주친 어머님의 뒷모습이 유독 작아 보였다. 꼿꼿하던 등은 조금 굽었고, 부지런히 밥상을 차려주시던 손마디는 어느새 굵어져 있었다. 얇아진 다리로 걷는 모습조차 불편해 보이시던 그 순간 시어머니라는 호칭 너머에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그 서글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짠해졌다. 어머님에게는 당신의 굽은 등을 밀어줄 딸이 없다. 내가 그 손을 다시 잡지 않는다면 어머님의 욕실 바구니는 영영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제안하는 사우나 나들이가 조금은 어색할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뽀얗던 살결은 아닐지라도 세월이 촘촘히 새겨진 어머님의 주름진 등을 마주하며 나는 다시 한번 깨달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그 따뜻한 정이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음을.
시어머니와 목욕탕을 가는 일은 나에겐 해야 할 도리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세월이 키워준 사랑이다. 이번엔 내가 어머님의 작은 등에 따뜻한 물을 끼얹어드리고 싶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 어머님이 내게 건네주신 그 뜨거운 밥상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