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보는가
나는 알랭 드 보통, 특히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의 열렬한 팬이다. 유난히 지쳐 ‘도대체 일은 왜 하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머리가 가득 찼던 어느 퇴근길에 우연히 발견한 책.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자신과 전혀 접점이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두루 만난다. 물류 창고 직원, 제과 회사 기획 담당자, 화가, 직업 상담사, 송전탑 수리공 등등…….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와 동행하며 각 직업을 일컫는 단어와 그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단순한 이미지를 뛰어넘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 일하는 모습, 그 삶의 일부분을 엿보았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경험이 독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일깨워 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썼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우리는 마치 천문학자를 취재하는 알랭 드 보통이 된 듯 그 삶을 짧게나마 들여다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천문학자라는 고상하고 신비한 단어 덕분에 밤하늘의 아름다운 천체를 관찰하거나 어려운 계산식을 칠판에 막힘없이 써 내려가는 삶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목은 말한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고. 아니,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본다는 거지?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삶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저자의 ‘천문학자 필터’를 끼고 세상을 함께 관찰한다. 천문학자의 눈에 비친 동물원의 동물들과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속 옥에 티, 연구자들의 열악한 연구 환경과 그 속에서 더 치열하게 생존하는 여성 연구원의 삶까지. 그러나 저자가 무엇보다 애틋하게 바라보는 대상은 바로 사람이다. 자신의 교양 수업 ‘우주의 이해’를 수강하는 청춘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취업용 ‘스펙’에 열정을 바쳐야 하는 현실에 미안함을 표시한다. 이어 척박한 조건에서도 우주를 동경하는 마음 하나로 그토록 즐겁게 몰두하는 동료 천문학자들도 바라본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인 그들을 동경한다고, 그 자신도 무해한 사람인 저자는 고백한다.
글쓰기와 멀어 보이는 과학자의 글이라고 미리 색안경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두 번째 소제목 그대로 ‘이과형 인간’이지만, 누구나 만날 법한 삶의 장면들을 천문학자만의 통찰과 똑 떨어지는 문장으로 멋지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의 삶으로 나아가는 자녀는 ‘보이저 1호’에 빗대었다. 보이저 1호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 불리는 사진을 지구로 전송하는 임무를 마지막으로 태양계 중력 범위에서 벗어나 끝없는 여행을 떠난 탐사선이다. 이처럼 글 잘 쓰는 과학자인 저자 덕분에 독자는 이과와 문과를 넘나드는 풍부한 에세이를 만끽한다.
천문학 지식을 쉽게 풀어 쓴 교양 과학서를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알기 쉽게 풀어 쓴 우주 이야기’는 이 책에 없다. 물론 책의 세 번째 소제목 ‘아주 짧은 천문학 수업’에서 한국 달 탐사 프로젝트의 현황, 잘 알려진 서양 천문학의 역사와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못지않게 뛰어난 우리나라 천문학의 역사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삶과 우리 사는 이야기로 회귀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는 의미에서 보면 이 또한 우주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되짚어 본다. 천문학자는 무엇을 보았던가. 그리고, 이제 시선은 자신에게로 향한다. 우리는 삶에서 무엇을 보는가,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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