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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 궁금하다면

지금 되돌아보면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문학 작품들은 하나 같이 명작이었다. 그래서일까. 시험을 앞두고 밑줄까지 그어가며 몇 번이고 읽었으면서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 안타깝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꼭 어떤 한두 문장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을 만큼 뇌리에 박혀 있다. 이를테면 “왜 설렁탕을 사 왔는데 먹지를 못하니(현진건, <운수 좋은 날>)”,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구지가)” 같은 것들. 이 문장들은 수업 시간이 끝난 직후부터 끊임없이 친구들 사이에서 리메이크되며 우리 나름의 ‘밈’이 되고, 같은 교과서로 배운 덕분에 같은 교육 과정을 거친 동년배끼리의 공감대가 된다.


그렇다면 일본에도 이런 작품이 있지 않을까? 세대를 불문하고 패러디되고 또 패러디되어 누구나 ‘착’ 하면 ‘척’ 하고 티키타카가 가능한.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고른 소설이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이다. 1940년에 발표된 소설이므로 이미 여러 버전의 번역본이나 여러 조합의 단편집이 나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2003년 ‘도서출판 숲’에서 출판해 총 여덟 편의 단편이 묶인 단편집 《달려라 메로스》를 선택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송 옮김, 《달려라 메로스》, 숲, 2003


이 단편집은 새삼스럽게 일본 근현대 문학 강의 시간에 배웠던 사소설(私小說)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했다. 작가 자신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간 소설. 서구에서 들어온 자연주의가 일본에서 변질되고 왜곡된 형태로 발현해 일본 문학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형식이라고 비판받기도 하는 장르. 사소설의 여러 의의 중에 굳이 부정적인 것만 골라서 늘어놓은 이유는 내가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변명 같기도 하고 핑계 같기도 한 이야기를 늘어놓을까 싶어서 작품 설명을 보면 사소설이더라, 하는 지난 경험들이 쌓인 탓일까. 


여덟 편의 작품 중 다섯 편은 사소설에 해당한다. 그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는 문구가 그것을 증명한다. 


나머지 7경을 정하려고 나는 가슴속 앨범을 펼쳐보았다. 그러나 이 경우 예술이 되는 것은 동경의 풍경이 아니었다. 풍경 속의 나였다. 예술이 나를 기만한 것인지 내가 예술을 기만한 것인지. 결론은, 예술은 나다. (76쪽, 동경 팔경) 


하지만 글쓴이는 다자이 오사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변명 같기도 하고 핑계 같기도 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참신하고 기발한 표현이 빛을 발한다. 세월이 흘러도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계속 찾는 이유가 아닐까.


스무 대 정도가 연달아 눈앞을 지나가고 그때마다 버스의 여차장이 꼭 나를 가리키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했지만 점점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고 팔짱을 껴보기도 하는 사이에 나 자신이 동경의 명소 중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조차 들었다. (81쪽, 동경 팔경)
한번은 그들이 나를 요시다(吉田)에 데려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정말 무서우리만큼 기다란 마을이었다. 산기슭이란 느낌도 들었다. 후지산이 태양도 바람도 가로막고 있어 기운 없이 자라난 줄기처럼 어딘지 어둡고 좀 으스스한 마을이다. (128쪽, 후지산 백경)


제일 처음 실려 있는 <귀향>과 마지막에 실려 있는 <고향>은 시차를 두고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글쓴이와 주변 인물들의 이름이 그대로 나오므로 글쓴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연결되는 이야기를 책의 맨 앞과 뒤에 배치하니 중간에 있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소설 속의 시간이 흐른 듯한 감각이 있어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점이라면 뒤에 나오는 <고향>에서 앞선 소설 <귀향>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원서 제목인 <귀거래>로 번역하는 바람에 이 두 이야기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아리송하게 여겨진다. 소설 시작 부분에 원서 제목이 같이 쓰여 있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아리송하게 남을 뻔했다.


사소설 다섯 편을 제외한 나머지 세 편은 각각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메로스(달려라 메로스), 성경 속 인물인 유다(유다의 고백), 일본의 어느 여학생(여학생)의 이야기를 쓴 글이다. 특히 <유다의 고백>과 <여학생>은 글쓴이 본인이 유다와 여학생으로 분해 일인칭 시점에서 쓰였는데, 화자의 입장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여학생>은 어느 여학생이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이 들기까지의 하루 동안 있었던 일과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 달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화자는 소녀 ‘나’이다. 똑 부러지는 듯하지만 아직은 지혜가 부족한 말투가 마치 정말 열서너 살쯤의 소녀가 썼을 법한 글이다. 번역도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뭐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이 책의 번역은 독특한 느낌이 있다. 굳이 촉각으로 표현하자면 까끌까끌한 사포 같은. 문장이 닳은 느낌이 없달까. 원서와 비교해보지 않아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직역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매끄럽게 의역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있던 나에게 이런 레퍼런스는 공부가 된다.


여섯 번째에 수록된 <달려라 메로스>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였다. 일본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소설 전체 내용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메로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의에 대한 이야기로 교훈이 될 만하기도 하고 대중적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 내가 이 소설집에서 가장 빨리 읽어 내려간 이야기.


일본인들에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장을 찾고 싶다는 나의 기대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첫 문장 “메로스는 격노했다(メロスは激怒した)”를 던지며 시작된다. 바로 이 문장이, 공교육을 받은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서 또래 사이에서든 각종 매체에서든 몇 번이고 패러디되고 있는 한 줄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문장이 왜 끊임없이 패러디될까? 격노까지 한 것치고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메로스의 처지가 우스꽝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나 역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에 꽂혀 무수하게 패러디물을 양산했으면서도 왜 그렇게 꽂혀 있는지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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