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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by narara

90년 전통 해장국집이 있다. 맑게 끓여낸 우거지된장국에 밥을 말고 실한 날계란 하나를 톡 넣어서 준다. 뱃속 가장 깊은 곳까지 뜨뜻하게 데워주는 슴슴한 국밥을 몇 숟가락 먹다가 통에 따로 담겨있는 빨간 양념장과 청양고추까지 추가하면 맛의 변주가 일어난다. 칼칼하고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한 끼가 차디찬 바람에 한껏 움츠려든 몸과 마음을 꽉 채워준다. 온 세상이 아직 깜깜하고 잠에 든 사람이 깬 사람보다 훨씬 많은 새벽 5시에 문을 여는 이 해장국집은 해뜨기 전부터 서둘러서 어디론가 가야 하는 바쁘고 고된 삶을 가장 경건하고 조용하게 응원해 준다. 새벽 5시에 누군가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3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내놓기 위해 주인장은 새벽 3시부터 준비를 한다. 얼마나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인지 가슴이 벅차오른다.


차를 점검하러 간 곳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 들어가 추어탕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며칠 전 TV에서 본 국밥집의 전경을 떠올려 봤다. 난 혼자 와서 일반 공깃밥에 추어탕만 시킬 수 있었지만 2인 이상이 오면 솥밥도 주문할 수 있는데 솥밥이라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따뜻하게 갓 지어낸 밥도 먹을 수 있고 솥바닥에 붙어있는 누룽지도 물에 불려서 먹을 수 있는 별미 중에 별미지만, 공급자 입장에서는 밥을 주문할 때마다 따로 앉혀야 하고 일반 그릇에 비할 수 없이 무겁고 씻기도 힘든 솥을 다뤄야 하는 말 그대로 빡센 메뉴가 아닐 수 없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애쓰는 나도 추어탕집 사장님도 그리고 90년 전통 해장국집 주인장도 모두 정직하게 먹고살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 중이다. 모두 공급자이기도 하면서 소비자이기도 한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하지만 똑같이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 내 등도 또 저들의 등도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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