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껏도 모르는 엄마 다시 태어나다
딸기요정은 고맙게도 신생아시절 비교적 무던한 아기였다. 먹이고 재우기만 제때 잘해주면 우는 일도 별로 없었고 조금만 토닥이면 금세 잠들고 등센서도 없어서 아기침대에 혼자 누워서도 잘 잤다. 특히 모두 어렵다고 하는 목욕도 물을 좋아해서 처음부터 울거나 버둥대지 않고 잘 협조하는 따지고 보면 육아난이도 중하 정도되는 아기였다.
그러나 이 모든 육아의 순간에 딸기요정이 객관적으로 순둥 했다는 것이지 돌보는 내입장에서 마냥 쉬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평소 아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기를 돌본 경험 또한 0이라고 할 수 있는 내한몸 건사하기도 힘든 지극히 평범한 30대 여자였다. 그런 사람이 애를 낳았다고 바로 아기를 돌볼 능력이 뿅 하고 솟아나는 게 절대 아니었다.
분명 내가 10개월 품고 8시간 진통하고 낳은 내 딸이 분명한데 할머니에게 안겨서는 잘 먹고 잘자던 딸기요정이 나한테만 오면 울고 불고 안 달래지고 불편해하니 내가 과연 엄마인가 내 딸이 맞는 것인가 현타가 왔다.
조리원에서 나와 친정에 있을 때 밤낮으로 못 자면서 아기를 돌봤지만 야무진 엄마가 전혀 되지 못했는데 급기야 친정에서 우리 집으로 아기를 안고 돌아오니 그야말로 허허벌판에 우리 둘이 던져진 기분이었다.
딸기요정이 울 때 도대체 왜 우는 건지 배고픈 건지 졸린 건지 혹시 아프기라도 한건 아닌지 무섭고 겁이 나서 동동거렸다. 울음이 터진 딸기요정을 땀이 뻘뻘 나도록 달랬지만 달래지지가 않아서 안고 나도 같이 엉엉 울기도 했다.
우는 아기를 안고 친정엄마에게 뛰어가고 싶은걸 꾹꾹 참으며 조금씩 조금씩 아기를 관찰하면서 아가가 원하는 것을 알아가고 방법도 찾아가면서 어느 시점에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잠시 병원을 다녀왔더니 울고 있던 딸기요정이 내가 안아주자 울음을 그치는 기적 같은 순간이 오고 친정엄마도 어미가 낫네라고 인정해 줬을 때의 그 뿌듯함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렇게 아기를 키운다는 건 끊임없이 벽을 맞닥뜨리고 그걸 뛰어넘으면 또다시 벽이 놓여있는 퀘스트를 끝없이 클리어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겨우겨우 먹이고 재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 밤수유를 끊어야 한다니 또 그걸 끊기 위해 아이디어와 방법을 모색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또 이가 아파 우는 아기 재우는 방법을 찾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또 유독 배밀이를 안 하던 딸기요정에게 배밀이를 유도하느라 고생을 했다. 그리고 배앓이 때문에 분유도 많이 바꾸다가 딱 맞는 제품을 찾아서 분유먹이기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고 시판제품은 안 먹었던 딸기요정 때문에 이유식책 찾아 공부하며 이거 저거 먹여보며 아기가 잘 먹는 것을 알아가야 했다. 그렇게 이유식의 달인이 되어 이유식 장사를 해야겠다 싶어 졌을 무렵에는 또 밥먹이기를 시작해야 하는 그야말로 끝이 없는 과제가 내 앞에 놓였다.
그런 모든 과정들이 육아서에서 나오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나름 옆에서 키우는 걸 밀착해서 지켜봤던 조카랑도 또 완전히 다른 나만의 육아였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개척자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것도 모르지만 꼭 해내야만 하는 포기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나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엄마로서 능력이 단 하나도 없던 내가 꼭 해내야만 하는 과제들 앞에 조금씩 엄마로 만들어졌고 현재 9살이 된 딸기요정을 키우는 지금도 끝없는 과제들을 맞닥뜨리며 지금도 하루하루 엄마로 성장해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건 결국 내가 엄마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었고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내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