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지만 일은 하고 싶어

엄마도 돈벌고 싶어요

by 혀나

나의 전직은 IT개발자이다. 내가 맡고 있던 시스템은 회사의 기간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각 계열사 시스템 유지보수 업무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면서 더욱이 인수합병이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회사 시스템 신규구축 프로젝트에 들어가거나 기존 계열사의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늘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맡은 분야가 생산 쪽이었기 때문에 지방공장으로 출장도 잦았고 프로젝트가 있으면 장기출장도 흔한 일이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종일 회의하고 일을 했지만 유지보수 업무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현업담당들은 왜 자기 일은 안 해주냐고 항의하는 경우까지 있어서 퇴근하고 집에 가서 계열사 유지보수일을 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로 일이 많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다 돌아보니 어느새 내 나이 만 35세 아기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그때당시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고 나이는 점점 차가고 결정을 해야 할 거 같았다. 나는 평소에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남편도 꼭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했었다. 그렇게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나는 아기를 딱 하나는 갖고 싶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 예쁜 딸을 낳아서 곱게 길러보고 싶은 그런 로망이 마음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더 늦어지면 아무래도 아이를 갖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결국 고민 끝에 회사를 퇴사하고 아기를 갖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시점에 오랜 시간 일만 하며 달려와서 좀 많이 지쳐있기도 했었다. 그렇게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정말 희한하게도 딱 한 달 정도만에 딸기요정이 우리에게 왔다. 정말 스트레스가 문제였는지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시기에 딱하고 임신을 하고 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힘들어 죽겠던 일도 안 하고 우리 집과 친정집을 오가며 먹고 자기만 해도 아기 키운다고 고생한다는 챙김을 받는 생활을 하던 참 행복한 임산부 시절이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동네산책을 하다가 인형 뽑기 몇 번 하고 시장 가서 떡볶이 사다 먹고 집에서 자다가 남편 오는 시간에 맞춰 또 나가서 같이 국수 먹고 들어오고 지금생각해도 인생에서 가장 속편 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배속에 넣고 있던 시절이 평화 그 자체였다면 아기를 낳고 나니 고생문을 활짝 열어젖힌 격이었다. 종일 동동거리고 힘든 것도 힘든거지만 집에 갇혀서 아기랑만 있다 보니 너무 외로웠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눌 사람도 없이 잠 못 자고 못 먹으면서 갓난아기를 하루 종일 돌보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이렇게 영영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애엄마만 남는 것인가. 이것이 내가 원하는 나의 삶이었던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사람이라는 게 기억을 자기 좋을 대로 왜곡을 하는 건지 일할 땐 힘들다고 그렇게 징징거리면서 회사를 다녔으면서 막상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니 출근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저 집이 아닌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도 같다.


아무튼 그렇게 일하고 싶었던 그 시점에 때마침 전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딸기요정이 15개월이 되던 때였다. 너무 기뻤고 꼭 다시 가고 싶었지만 막상 15개월짜리 아기를 놓고 일을 가려니 엄두가 안 났다. 그나마 옆에 사시는 친정엄마가 어린이집 등하원을 도와주기로 하셔서 천만다행이었지만 겨우 걷기 시작했고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종일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기를 키우는 내입장을 잘 아는 회사에서 근무시간도 조정해 주고 특히 친정엄마가 도와주시겠다고 다시 꼭 일하러 가라고 해주셔서 용기를 내고 출근을 결정하게 된다. 출근 전 어린이집 적응을 충분히 시켰건만 막상 첫 출근 날 아침 일찍 딸기요정을 어린이집에 놓고 나오니 그렇게 눈물이 줄줄 났다. 엄마랑 떨어져 본 적 없던 딸기요정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엄마를 찾진 않을까 그렇게 아침부터 울면서 버스를 타고 출근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또 해방감이 스멀스멀 들었다. 오랜만에 어른사람과 얘기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라는 사람이 아직 사회에 자리가 있구나 뿌듯했다.


그렇게 아기도 키우고 돈도 벌고 너무나 바쁜 하루하루였다. 그래도 걱정과는 다르게 아기는 잘 자라고 있었고 돈도 벌어서 저축도 하고 오래된 우리의 경유 SUV대신 새로 나온 큼지막한 차로 바꾸기도 하고 바빴지만 활기찬 생활이었다. 그때 지금만 같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마음은 좋았지만 욕심만큼 그 모든 게 쉬웠던 건 아니었다. 일은 여전히 바빴고 퇴근 후엔 잠 못 자고 아기를 돌봐야 했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건강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허리가 왕복 4시간에 가까운 출퇴근과 과로로 인해 통증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악화가 되었고 그 와중에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육아스트레스까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특히 나는 스트레스를 잘 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중에 일하면 주말에라도 좀 쉬고 나를 위한 시간도 가졌어야 했는데 아기를 누구에게 맡기질 못해서 늘 한 몸처럼 붙어있었다. 혼자 조용히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영화라도 한편 보면서 숨이라도 쉴걸. 그런 소소한 시간조차 전혀 가지질 못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차곡차고 쌓으며 하루에 3시간도 채 못 자고 허리통증에 시달릴 때, 버스 안에서 아파서 똑바로 앉지도 못해서 거의 울면서 출근했을 때, 힘이 드니 작은 일에도 화가 너무 날 정도로 감정컨트롤이 쉽지 않았을 때, 그때라도 멈추고 쉬었다면 내가 그렇게 큰 병에 안 걸렸을까.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내 몸의 신호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멈추지 않았으며 마침내 내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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