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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Feb 28. 2020

바보 같은 불행에 집중하다

눈바람 부는 선자령에서

주말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버스에 올랐다.

3년 전 가을비가 내리던 날 처음 들었던 선자령의 하산길을 어쩌다 이번엔 들머리로 오른다.

올라가는 길의 풍경과 내려오며 마주하는 산세가 이토록 달랐던가?

양떼목장의 초록 울타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길이 같은 길이 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할 뻔했다.

어딘가 낯익은 풍경이구나 하면서 걷다가 나도 모르게 지난번 하산길에 마주한 길임을 그때서야 알아챘었다.

그 느린 깨달음을 뒤로하고 문득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가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울타리는 짐승 막으려고 해 놓은 거네. 양들 공격하지 말라고."


지난 며칠 내린 비로 인해 길이 온통 황톳빛으로 질척이고 있어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좁은 길을 서로 조심스레 비켜가며 오르는 중이었다.


'이 울타리가 들짐승으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한 거라고? 사람이 아니었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가림막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즈음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부침들에 지쳐있는 중이었다.

짐승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다가오는 사람들을 막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아무렇지도 않게 놓인 저 담을 보면서 스스로 벽을 만들고 있었나 보다.

행복해지려고 걷는 이 길에서조차 불행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 어쩌면 사람이 생태계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이 아니던가.'

그들이 말한 짐승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놓치고 사는 것들이 어찌 이렇게 많은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를 보느라 울타리가 갖는 의미를 제 멋대로 규정하고 또 홀로 우울해하는 건 아닌가?

3년 전 안개 자욱했던 가을에 만난 이 길과 올 겨울 마지막 눈일지도 모를 그 눈바람 속에서의 나는 어디서 이렇게 서성이고 있는 건가?


이 바보 같은 생각들은 언제쯤 멈출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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