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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Jan 31. 2020

시간을 흘리다

여주 강천섬에서 

올 겨울은 유난히 내게 혹독하다. 

어디선가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누군가에는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 소식에 계속 목이 말랐나 보다.

세상 곳곳은 유난히 뿌였고 마음 또한 흐려지려고 한다.

이게 다 눈을 못 본 것이라고 탓하면서 홀로 마음을 달래 본다.

그렇게 1월 들어 처음으로 이름난 산에 제법 눈이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은 사부작사부작 눈을 밟고 있었지만 몸은 이렇게 일을 해야 하니 눈을 보러 달려간 이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천천히 낯섦을 지워내는 중인 사람과 그렇게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훌쩍 다녀오자고 겨울에는 사람이 없어 한가하다는 강천섬을 그렇게 먹을거리 몇 가지만 준비하고선 출발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함을 바랐건만 너무 따뜻한 겨울인 탓에 주차장에 세워진 여러 대의 차량을 보고는 아주 한가로운 장소는 아니리라 지레 짐작하고는 배낭을 고쳐맸다.


생각보다 훨씬 더 넓은 잔디밭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 

사람 간의 간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길게 뻗은 길을 보며 이곳은 가을에 오면 참 좋겠구나 생각했다.

곧추 선 은행나무들을 바라보며 가을의 강천섬을 상상해본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이 이상한 겨울의 바스러진 흙길을 밟으며 잠시 내가 스쳐간 공간을 뒤돌아봤다.

어쩌다 섬이 되어버린 이곳의 바스러진 나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마냥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여전히 흘려버린 시간의 뒤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홀로 이 길을 걸으며 가끔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가끔은 이렇게 살아보자고 나에게 속삭여본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곳에서 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겨울에 끄적인다.

눈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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