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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Aug 23. 2020

완벽한 하루

소금강, 안반데기 그리고 삐걱거리는 밥들

갑자기 오대산 소금강이 생각났다.
너무 오래 산행을 안 했기에 뭔가 걷고 싶기도 했고 
어쩐지 지금쯤이면 딱 좋으리라 생각됐다.
어딜 가고 싶냐고 그가 물었고 친구와 함께 산채정식을 싹싹 비웠던 그 음식을 그도 먹어보면 좋겠다 싶어 구체적인 계획 없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무작정 출발했다.

오대산 소금강에서 산행을 간단히 하고 산채정식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소금강에 도착하니 어느새 아침 9시가 넘었다.
일단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배를 좀 채우자 싶었다. 역시나 아무 식당은 허기만 달래주는 돈이 아까운 음식점이었다.
맘이 상한채 식당을 나와 그와 산행을 시작했다.

오래전 홀로 이곳을 걸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여름이었다.
폭우가 쏟아졌던 그날은 계곡을 홀로 걸었다.
지금처럼 무작정 코스를 잡았고 갈 수 있는 곳까지만 걸어야겠다 생각하며 쏟아지는 비를 헤치며 산행을 했다.
빗소리는 제법 경쾌하게 마음을 시원하게 적셨다.
마실 나온 차림의 사람들은 가볍게 계곡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고 나만 홀로 전투태세로 걷고 있었다.
물소리가 시원하게 마음을 적셔줬으나 이내 사람들과 멀어지면서 혼자 계곡 산행을 하기에는 다소 위험하겠다는 생각에 뒤돌아 하산을 했다.

오대산 폭포


시간이 한참 흘렀어도 짧은 산행 중 시원한 물소리는 오래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그와 함께 이 길을 걷는다.
달라진 내 지금처럼 그곳의 풍경은 물소리를 빼고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전혀 기억에 없는 새로운 곳을 걷는 기분이었다.
걷는 내내 너무 낯설다고 그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소금강이 처음이라며 백운대까지 걷는 내내 
물소리가 함께 해주니 참 좋은 여름 길이라며 동행의 고마움을 건넨다.
그가 좋아하니 덩달아 나도 행복하다.
홀로 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뭔가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물론 귀찮을 날도 오겠지만 지금까지 그와 보내는 길들은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날이 많다.

걷는 내내 시원한 그늘을 만나는 소금강


배가 고파진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는 내려왔다.
시원해진 이 기운을 담아 맛있는 밥을 먹으러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가려던 식당 모두 영업 종료란다.
애초에 시작은 산채정식이었는데 이걸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오늘 이 여행길 입맛이 써진다.
대충 근처에서 막국수를 먹고는 길을 떠났다.

완벽한 하루는 이렇게 살짝 삐걱거리기도 하는 법.
사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기는 어렵구나! 를 실감하며 안반데기의 별을 기다린다.

올 들어 가장 많은 별을 만나고
일 년여 만에 반딧불이와 마주하고
쏟아지는 별 속에서 은하수를 보며 
문득 완벽한 하루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안반데기의 노을


낮동안에 먹었던 맛없어 돈 아까운 그 음식들도 어쩌면 쓴 맛과 단 맛을 모두 담기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걷는 내내 함께 했던 계곡의 그 시원한 물소리와
더없이 반짝이던 별들이 빛나는 건 
이런 삐걱거리는 것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거라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안반데기에 쏟아지는 별들, 은하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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