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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Jun 19. 2020

첫 수저를 들기 전에 누군가 내게 와줬으면 좋겠다.

아부지와 육개장

아직 싸늘함이 남아있는 초봄이었다.

"아부지"

"뭐더러 왔냐?"

"......"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시장으로 향했다.

그때쯤이면 아버지가 시장 어귀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을 시간.

늦으면 길이 엇갈릴 테니 서둘러야 했다.

뛰어오긴 했으나 막상 멀리서 아부지의 손수레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렸다.

누가 이 길로 이끈 것도 아니었는데 행여나 하굣길에 친구들을 만날까 부끄러웠다.

'쭈뼛쭈뼛'


"아부지"

깡마른 시커먼 얼굴이 나를 돌아본다.

"뭐더러 왔냐?"

"도와줄라고 왔스요."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아부지는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미간에 주름살이 도드라진 아부지가 행여나 나를 혼내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 무렵 아부지는 유난히 자주 앓으셨고 그것이 폐병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아부지의 잦은 기침 소리가 염려되었다.

청소부인 아부지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숨넘어갈 듯 뱉어내는 기침 소리는 어린 내게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가"

빗자루를 리어카에 탁 던지고서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시려는 듯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나도 모르게 수레 뒤로 걸음을 옮겨 리어카를 밀었다.

아부지는 아무 말도 없이 시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드르륵'

갑자기 아부지가 멈춰 섰다.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던 나도 덩달아 섰다.

하얀 페인트 가루가 벽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던 신작로 부근 어느 가게.

'끼익'

조심스레 아부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음식점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거나하게 몇 잔 걸친 아부지를 찾아 나선 곳은 항상 선술집이었지 이런 식당은 처음이었다.


테이블 서너 개와 의자 몇 개가 대충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더니 아부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모서리가 헤진 식당 테이블 귀퉁이를 쳐다보며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식당 안에 손님이라고는 우리뿐인 그곳에서 아부지가 주인을 보며 중얼거린다.


"묵고 가라."

삐그덕 소리와 함께 이내 식당 문이 닫혔다.

아부지가 가버렸다.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내 앞에 테이블 위에 빨간 국밥 한 그릇만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던 나는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이상하게 생긴 국은 뭘까?

반찬들이야 시골 반찬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지만 이 빨간 국은 휘휘 저어보니 고기와 무, 고사리가 담겨 있었다.

고기를 이렇게 찢어서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 국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다 동네에서 소나 돼지를 잡으면 아부지가 신문에 쌓은 고기 한 덩어리 들고 오는 것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밥상에 올라온 기억이 아예 없는 걸 보면 그건 아마 아부지의 몫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날 그 육개장의 맛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뜨거운 국물을 삼켰을 때 뭔가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맵고 아렸다.

고깃국 한 번을 제대로 못 먹어봤던 내게 아부지는 처음으로 식당으로 데려가 주었다.

생활에 찌들어 한 끼조차 자식과 나란히 나누지 못했을 내 야윈 아부지가 생각난다.

홀로 남아 그 국을 비우며 나는 훌쩍 일터로 가버린 아부지가 철없이 미우면서도 좋았다.


돌이켜보니 그건 내 삶에 첫 번째 외식이었다.

성인이 되어 훗날 그 국이 육개장으로 불린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디선가 육개장을 볼 때마다 '첫 수저를 들기 전에 누군가 내게 와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아부지와 마주 보고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속삭여본다.


보고 싶다.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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