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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라풀 Jan 31. 2021

둘이서 함께 걷는 한국의 100대 명산

첫 번째. 삼각산에 들다.

홀로 한국의 100대 명산을 시작한 때가 2012년 무렵이었다.

어쩌다 주말에 시간이 나서 무작정 배낭을 꾸려 차도 없이 홀로 뚜벅이 산행을 했다.

그러다 보니 교통편의 제약이 너무 많아 몇 년에 걸쳐 전국의 스무 개 정도의 산을 다닌 것이 전부였다.

살면서 꼭 해보자고 결심했던 다짐들이 번번이 차편에서 무너졌다.

그렇게 한국의 100대 명산 걷기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늘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던 산행을 새해 들어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에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100대 명산을 걸어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이렇게 다시 시작해보는 거다.


애초에 우리의 한국 100대 명산 첫 산행지는 유명산이었다.

둘 다 계획을 짜기보다는 무작정 여행하는 편이라 딱히 정한 것은 없었다.

산림청에서 정한 것을 기준 삼아 서울을 제외한 곳을 우선순위로 골랐을 뿐.

대중교통으로 가기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경기도 유명산으로 정했다.

몇 년 전 홀로 가본 적이 있어 그 기억을 더듬어 함께 걸으면 되겠지 했다.

그가 전날 밤 버스 시간표를 검색했더니 아침 8시경 출발이라고 했다.

어렴풋한 기억에도 그 시간에 잠실역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고 대꾸하고는 잠을 청했다.


아침 6시 30분경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는 고작해야 따뜻한 물과 수프 2개, 모자, 스틱, 아이젠, 방한복

그리고 쓰레기를 담을 봉투와 집게가 다였다.

미리 간식을 준비했어야 하나 싶었지만 가다가 김밥을 사면 되지 하고는 짐을 꾸렸다.

챙길 것이 많지 않아 버스 시간이 제법 길게 남아 있었다.

날이 추워 버스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야지 하며 휴대폰으로 출발 시간을 검색했다.

1월 중 쓴 어느 블로그 글을 보니 잠실발 유명산행 버스 출발 시간이 7시 15분이라고 쓰여있었다.

다음 버스가 10시 15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시간이 7시 20분인데 그럼 버스는 이미 떠난 거라고?
잠시 당황한 마음에 휴대폰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제대로 알아볼걸.'

이미 떠난 버스인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다음 차를 기다리기보다는 서울에 있는 산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삼각산이 우리의 100대 명산 첫 산행지로 정해졌다.

산행 코스는 예전 육개장을 가격 대비 맛나게 먹었던 수유 부근을 날머리로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산행인 데다 아침부터 눈발이 날려 내복을 입었더니 몸이 둔하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배가 고팠다.

북한산 우이 역에서 내려 꼬마김밥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도선사까지 걸었다.

산머리는 가스가 가득 차 조망을 기대하기는 어렵겠구나 생각하며 신발끈을 조였다.

날이 안 좋아 사람이 별로 없겠지 했는데 벌써 하산을 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9시경 출발을 시작했다.

백운대를 향하는 길 위로 간간히 눈발이 날렸다.

하산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쌓여있는 눈을 보고 있으니 위쪽은 눈이 많이 오나 싶어 괜히 설레기 시작했다.

눈 쌓인 인수봉을 바라보는 인수암의 삽살개

그러나 마음은 두근거렸지만 몸은 말을 잘 듣지 않아 도선사 입구를 출발해 하루재를 무려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앞서 가는 그가 자꾸 뒤를 돌아다봤다.

항상 느리게 걷는 내 보폭을 맞춰 걷는 그지만 오늘은 내가 유난히 더 더뎠나 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걸어보려고 했지만 쉽사리 간격이 좁혀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느리게 걸어 지금은 폐쇄된 백운산장에 도착했다.

항상 주전부리를 나눠먹던 곳이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쉼터가 모두 폐쇄되었다.

엉거주춤 서서 율무차 한 잔을 나눠 마시고는 곧장 위문으로 향했다.

혹시나 하며 걸었더니 기대했던 상고대와 딱 마주했다.

겨울 산행의 묘미인 상고대를 보며 사람들이 줄지어서 오르는 백운대 길을 올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정체가 심해 옆길로 가다 보니 고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상부근 줄지어서 오르는 사람들

너무 오랜만에 이런 길을 걷나?

이 정도로 쫄다니...

잔뜩 힘이 들어가는 몸을 이끌고 백운대로 향했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길 곳곳에 쓰레기가 보였다.


길을 걷는 동안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산행을 하자고 결심했다.

정상에 가까워져 가니 산을 올라오는 동안 힘들어서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쓰레기가 별로 없네 하면서 올랐던 길이었다.

봉지에 하나씩 채워지는 쓰레기들.

사탕이며 초콜릿 봉지부터 생수, 마스크, 휴지 심지어 막걸리 병까지 눈에 띄었다.

어쩌다 누군가 흘린 것이기를 바라며 가져온 봉투가 조금씩 채워지는 것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이 길 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함부로 버리고 살았을까?

백운대 부근 바위에 앉아 그와 따뜻한 수프를 마시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산행을 하자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하산을 시작했다.

정상에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림처럼 펼쳐진 상고대가 있어 오래 머물고 싶은 풍경이었다.

소나무에 핀 상고대

우리의 시작에 선물 같은 상고대를 보여준 삼각산을 뒤로하고 용암문과 대동문을 지나 수유동으로 산행을 마무리했다.

무려 7시간이나 걸린 산행이었다.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허기에 지치긴 했지만 상고대를 만났으니 그걸로 이 산행은 다 된 거다.

가성비를 자랑하던 그 밥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참 고마웠다.

그곳에서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운 그를 보면서 괜히 행복해졌다.

우리 앞에 많은 산이 펼쳐져 있듯이 그와의 길들이 기대된다.

처음 마음처럼 아끼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리라.

한국의 100대 명산 그 첫번째 삼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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